박문영 페미니즘SF 『지상의 여자들』
화를 내다 사라지는 남성들
여성들의 유토피아로 변하는 구주시
“페미니즘은 차이가 차별로
번지는 걸 주의하는 운동”

 

박문영, 『지상의 여자들』, 그래피티북스
박문영, 『지상의 여자들』, 그래피티북스

 

“몇 해 전 지방으로 이사를 했어요. 한적한 동네 풍경이 기괴하게 느껴지던 중 강남역 사건을 접했습니다. 시위와 세미나 때문에 서울에 자주 나갔는데 귀가 할 때면 마음이 무거웠어요. 작업 기간은 짧았지만 서울과 집을 오가면서 머릿속에 돌던 장면들과 짧은 물음을 소설의 시작으로 삼았어요.”

박문영 작가는 지난 연말 펴낸 『지상의 여자들』을 쓰게 된 계기를 말했다. 『지상의 여자들』은 가상의 도시 구주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페미니즘SF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구주시의 남자들이 사라진다. 화를 내다가, 윽박지르다, 폭력을 가하다 사라지는 남자들을 두고 생존자들은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 현상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등 혼란스러운 와중에 남성우위사회는 균열하기 시작한다.  

박문영 작가 ⓒ그래비티 북스
박문영 작가 ⓒ그래비티 북스

 

화를 내는 남성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사건을 겪은 구주시는 여성을 위한 도시,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도시로 변모한다. 박 작가는 구주시를 “구주시는 가상의 소도시지만, 굉장히 흔하고 평범한 도시로 여겼어요. 변화 전 구주시에서는 21세기 한국인들이 모인 지역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변화한 구주시가 온전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곳 여성들이 전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내가 쓰고 싶은 페미니즘SF는 디스토피아가 아니었어요. 세계가 멸망하는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동시에 『지상의 여자들』의 주인공 성연은 출장을 간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중 오랜 친구 희수와 미묘한 감정흐름을 겪는다. 박 작가는 이성애중심주의적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 것이냐는 질문에 “세상에 일백 퍼센트 이성애자는 희박하고,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정체성은 조금씩 해체되거나 재구성 될 수 있다고 봐요.”라고 답했다. 

『지상의 여자들』은 페미니즘 SF로 출간됐다. 여성들이 웃으며 행복해하는 도시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SF’일까. 여성주의는 박 작가에 떼려야 뗄 수 없다. 박 작가는 자신에게 있어 여성주의란 차이가 차별로 번지는 걸 주의하는 운동이라고 답했다. 지금 밖으로 드러난 성질을 ‘현성’,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성질을 ‘잠성’이라며, 존재의 우열을 줄 세우는 사회에서 새로운 표현과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관심 갖는 이슈는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요.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오용될 때마다,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를 가해자가 취사선택할 때마다 착잡해져요. 내 소설에는 여성 외에도 사회적 발언권이 미약한 또는 발언권 자체가 없는 존재들의 말을 담고 싶어요. 여성이 자신과 다른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서도 짚으려 합니다. 페미니스트라는 선언보다 선언 이후의 나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박 작가는 소설 뿐 아니라 만화, 일러스트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주변인에 어쩌다 그림은 보여주기도 하지만 글은 되도록 노출하지 않아요. 픽션 안에서 논픽션을 찾으려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글이 무서워요. 사람들의 판단은 그림보다 글에서 내려지기 쉬운 것 같아요.” 

“요즘은 독자 분들의 비판을 챙겨 읽고 있습니다. 발표한 소설이 적다보니 매번 서툴고 비장하게 쓰게 되는데, 작업을 쌓으면서 더 늠름하고 담담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2016년 계간 ‘자음과모음’에 발표한 『주희, 상수』도 소소한 페미니즘SF였는데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든, 작업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이 경향은 유지될 것 같아요. 이번 장편을 끝내고 준비하고 있는 건 만화에세이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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