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이후 현대까지 약 100여년 간 여성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여성사 전시관이 지난해 12월 9일 문을 열었다. 서울시 구로구 대방동에 위치한 서울여성플라자에 자리 잡은 여성사 전시관은 남성의 역사 속에서 주변에만 머물러 왔던 여성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여성연구소 변신원 선임연구원은 여성사 전시관이 이러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이 기고를 계기로 여성사 전시관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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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학술지원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돼 여성사, 그 중에서도 한국 근현대 여성 문화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한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적당한 장이 없던 터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연구를 위한 1차 자료들, 즉 기록이나 사진, 유물, 작품 등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의 부침이 많았고 더구나 전쟁으로 유실된 자료들이 많다는 것이 한 원인이겠으나, 더 큰 이유는 여성의 역사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데 기인하고 있었다.

이런 터에 서울 여성 플라자 안에 개관한 여성사 전시관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내심 잔뜩 기대를 품은 채 방문했다. ‘위대한 할머니, 우리의 딸들을 깨우다’라는 기대를 해도 좋은 멋진 제목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관에 대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돌아왔다.

전시관을 안내하는 도우미들에게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는 것 정도는 차라리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용이니까. 여러 언론매체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영상자료와 음성자료가 동원된 입체적인 전시인 것은 사실이었다.

짚·풀 생활사 박물관이나 옹기 박물관 같은 민간 박물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조명은 기본이고 (그러나 이런 박물관의 소장품에는 전시물에 대한 오랜 관심과 애정이 물씬 배어 있다) 여성민요, 해녀노동요, 내방가사 등도 청각 자료로 재구성됐고 여성독립운동과 여성운동사도 상영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성사 전시관의 그 화려한(!) 전시 기법에 감동할 뻔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 확실한, 게다가 그것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여전히 적지 않은 비용을 쓰고 있을 것이 확실한 전시관은 내용의 깊이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눈에 띄었다.

우선, 여성사 전시관이라는 명칭과 전시 내용물의 관계 - 우리 민족의 여성사 전통은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의 내용은 여성사라는 말로 포괄하기에는 너무 최근의 것들만 전시돼 있었다.

따라서 근현대 여성사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지 않다면 100년 전에는 여성이 살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러한 개념의 혼류는 외압에 의한 근대화가 마치 여성 역사의 시원인 것처럼 착각하게 할 것이다.

다음, 전시 내용물 자체의 문제로는 너무 무성의하다는 점이다. 부분적으로 왜곡된 부분도 있다.

제 1부 스쿨 걸 아바타는 근대초기 여학생들의 교복을 아바타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내용이 아바타로 소개된다는 게 유치함은 물론, 더욱 심각한 것은 아바타 배열이 다분히 역사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E여고의 교복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는 단 한벌 - 구석에서 등장하는 S여고의 몸빼다. 몸빼는 일제 말기 조선 여성들을 전시체제에 동원시키기 위해 억지로 입힌 옷이라는 의상학 전공자의 귀뜸은 나를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E여고가 이를 제일 먼저 입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지만 큰 역사 왜곡의 현장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이 전시관에 참여한 연구주체가 누군지 궁금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제 3부 ‘여성 일하다’에서는 각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여성 15명의 업적이 자료, 사진과 함께 따로 전시된다고 보도됐는데 그 전시물이란 게 신문이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사진을 확대해 액자로 만들고 약력과 쟁점을 간단히 정리해 함께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자료나마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이 전시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전문가들이다. 좀 더 사실에 입각한 내용 있는 전시를 위해 더 많은 성의를 보여야 했던 게 분명하다.

제 4부 ‘여성, 달라지다’에서 보여준 의식주 문화 변천사는 실로 빈약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국적 없는 의상을 걸친 마네킨 세 개, 아이들이나 해보고 노는 인형옷 입히기가 의생활 변천사이며 식문화 변천사가 고작 음식의 서구화, 인스턴트화란 말인가.

여성사를 보는 시각이 참으로 경박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돈은 많이 들었지만 근시안적이고 졸속 처리로 인한 실적 올리기의 흔적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진정으로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여성사를 위해 시간을 갖고 숙고하며 제대로 된 전시관을 열도록 노력해야 한다.

변신원(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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