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밝힌 따뜻한 바자회
계획보다 3배 이상 모여
미혼모부 아이들 위한
낮잠이불, 체온계 기부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치있게 살아가길”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는 “그로잉맘은 ‘심리적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며 “다양한 콘텐츠와 창의적인 방법들로 이 문제를 혁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 ⓒ여성신문

 

“연말에 바자회 하자”

회사 투자유치를 위한 엑셀레이팅과 여러 프로젝트의 마감으로 분주했던 지난 가을,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고 부대표와 팀원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모든 회사가 가장 바쁘다는 연말, 특히 회사설립 2주년을 앞두고 많은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는 이 때에, 바자회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미혼부모들을 지원하는 작은 기관을 방문한 이후로 바자회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혼부모를 위한 여러 가지 지원이 있지만 여전히 그 지원기준안에 포함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를 가진 미혼부모들이 참 많았다. 주민등록등본이 말소되고 거주지가 없어 지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도움없이 어려우며,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과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미혼부의 경우 그 어려움은 몇 배나 더 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동일했다. 어떻게든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것. 기관을 방문하여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무엇이든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혼부모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때 들고 갈 낮잠이불과 열이 날 때 잴 수 있는 체온계가 부족하여 거기에 기부금을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는 내내 운전대를 잡고 울었다.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면서 한번 도 고민하지 않았던 그 사소한 물건, 그것이 너무 간절한 누군가를 돕자. 그것이 바자회를 기획한 이유의 전부였다. 그로잉맘의 이름을 신뢰하며 지난 일년간 함께 해준 많은 부모들의 여러 가지 재능을 한자리에 모으면서 그것이 또 다른 부모를 세워주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의미있고 근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곧 회사가 있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 장소를 후원받고, 엄마들이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소규모의 마켓을 운영하는 또 다른 엄마운영자를 섭외하여 엄마들의 아이디어가 듬뿍 담겨있는 상품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년 동안 그로잉맘과 여러모로 함께 일해왔던 강사들을 섭외하여 물건만 사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코칭이나 아트수업을 받고, 운동법을 배우거나 뱅쇼를 마시며 참여하는 토크쇼 등도 기획했다. 강의를 들으며 기부도 함께 하는 멋진 기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해준 전문가 분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행사의 윤곽이 잡히고 홍보가 시작되면서 많은 분들의 후원이 끝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랜시간 우리회사의 여정을 지켜봐주었던 많은 전문가 작가님들, 출판사들, 기업들의 물품 후원이 이어졌다. 누군가를 돕기 위한 바자회만이 아니라 엄마아빠로 살아가는 모두의 축제 날이 될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행사 당일은 올 겨울이 시작하고 가장 추운 날이었다. 하지만 6시간 동안 운영된 행사장은 많은 사람들의 열기로 따뜻했다. 아주 오래전 단 한번의 그로잉맘 수업을 들었던 엄마들이, 인천,의정부,분당 등에서 와주셨고 성수동 소셜벤처에서 근무하는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따뜻한 소비를 해주셨다. 그리고 바자회를 마친 후 통장을 보니, 바자회가 진행되는 동안 지방, 해외에 있어 오지 못하는 많은 분들의 기부금이 가득차 있었다. 처음 계획했던 금액의 3배 이상이 모이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맘나누장’ 바자회

누군가는 회사가 이익이 전혀 없는 바자회 활동을 왜 하는지 묻곤 한다. 또 누군가는 소셜벤처니까 하는거구나 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바자회는 <부모로 살아가는 삶을 보다 행복하고 가치있게 만들자> 라는 회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기 하다. 우리가 기획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치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함께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우리 회사의 몫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부모로서의 효능감과 행복은 내 아이를 잘 키울 때 극대화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개인의 삶의 다양한 역할이 균형있고 가치있게 움직일 때 삶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된다. 많은 부모들을 현장에서 만나다 보면, 나로 살다가 부모로 살게 되었을 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너무 줄었다는 호소를 자주 듣게 된다. 이번 바자회를 마친 후,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했던 많은 분들에게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해서 보람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자회에 와서 수업을 듣고 물건을 구매했던 분들도, 기부를 하려고 왔다가 나의 꿈과 목표에 대해 발견하게 되었다는 후기를 남기셨다. 미혼부모를 돕게 된 것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는 부모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부모가 되었기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귀중한 내 아이를 만났기에 세상에 많은 것들에 더 관심이 생기고 다른 아이들도 귀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가진 부성과 모성을 세상에 흘려보낼 수 있는 기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또한 이러한 일들을 기획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기업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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