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리더 황다건 SNS에 ‘일베 등 성희롱 심하다’ 글 게재
치어리더 심혜성, 박현영도 동조 글 SNS에 남겨
‘스포츠걸 폐지하자’ 의견, 국민청원 등 통해 확산돼
여성단체 등 이들 여성의 인권 문제에서 접근해야
“성희롱 잘못 피해자에 전가하는 ‘피해자 유발론’ 명백한 잘못”

프로농구 경기에서 멋진 응원을 선보이고 있는 치어리더들. ⓒ뉴시스
프로농구 경기에서 멋진 응원을 선보이고 있는 치어리더들. ⓒ뉴시스

 

직종의 특성상 노출이 많은 치어리더들이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희롱을 잇따라 폭로하면서 그동안 성상품화 문제로 지적돼 온 치어리더, 레이싱걸, 라운드걸 등 스포츠걸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앞서 세계 최고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1)이 레이싱모델을 폐지하는 등 스포츠걸 퇴출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성단체 등은 성희롱에 대한 폭로를 스포츠걸 폐지 여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로 이 문제를 이들의 인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황다건이 지난 12월10일 SNS에 자신을 희롱하는 내용이 담긴 일베 게시물을 게재하면서다.

황다건은 “댓글창은 더러워서 못 보겠다”며 “관계하는 묘사부터 사진·영상 다양하게 오는데 제발 좀… 성희롱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적었다. 이어 “치어리더라는 직업은 재미있고 좋지만 그만큼의 대가가 이런 건가”라며 “이젠 겁도 나고 막막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특히 당시 그가 만 18세인 고등학생으로 미성년자인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큰 논란을 일으켰다.

치어리딩 중인 심혜성 치어리더. ⓒ심혜성 인스타그램
치어리딩 중인 심혜성 치어리더. ⓒ심혜성 인스타그램

 

역시 당시 만 18세의 미성년자인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심혜성도 지난달 11일 SNS를 통해 “‘성희롱이 싫으면 노출이 없는 옷을 입어라’, ‘노출 없는 일을 해라’라는 말로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안기고”라며 “수십수백 명의 치어리더가 성희롱을 수도 없이 당해도 그중 몇 명이 나처럼 자기 의견을 알릴 수 있을까?”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치어리딩 중인 박현영 치어리더 ⓒ박현영 인스타그램
치어리딩 중인 박현영 치어리더 ⓒ박현영 인스타그램

 

그의 폭로에 삼성라이온즈의 또 다른 치어리더인 박현영(19)도 “우리가 노출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 그냥 춤추고 무대 위에 서는 게 좋아서 치어리더라는 일을 하는 사람도 충분히 많다는 걸 알아주세요. 제발”이라고 심혜성 글에 댓글을 남겼다.

SNS 글에 논란이 심해지자 이들은 글을 삭제했다.

비단 일베 뿐 아니라 유명 연예 매체의 한 사진기자가 치어리더, 레이싱 모델들의 치마, 숏팬츠 밑이나 가슴 등을 부각시키는 구도의 사진들을 찍어 사이트에 게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지난달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치어리더의 성추행과 관련해 스포츠 경기에 치어리더를 없애주세요”라는 청원글까지 등장, 1월1일 기준으로 1109명이 청원에 참가했다. 하지만 이 청원글에 “자신이 만드는 문화, 벗지 말고 하든가‘라는 비난 댓글도 달렸다. 또 지난달 15일에는 이를 확대해 ‘레이싱걸, 치어리더, 라운드걸 다 폐지시켜 주세요’라는 청원 글도 올라왔다.

스포츠걸 폐지 요구에 치어리더나 누리꾼들은 “이는 오히려 치어리더, 레이싱 모델 등에게 성희롱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반발했다.

자동차 경주대회는 이에 앞서 레이싱 걸 기용에 대해 수년간 성상품화라는 비난이 커지자 레이싱 모델을 더 이상 기용하지 않는 등 발빠른 조치에 나서고 있어 스포츠걸 폐지 흐름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F1은 지난해 1월31일 월드챔피언십 시즌에서부터 레이싱 모델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지난해 2월 개최된 호주 그랑프리부터 이를 적용했다. F1은 성명을 통해 “그리드 걸(레이싱 걸) 고용 관행은 수십 년간 F1 그랑프리의 필수 요소였지만 현대 사회 규범과는 상충한다”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지난해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018 제네바모터쇼’에서 레이싱걸 부스가 대거 축소됐고, 지난해 6월 개막한 ‘2018 부산모터쇼’에서도 여성 대신 남성 모델을 기용하거나 단정한 옷차림의 레이싱걸을 선보이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또한 지난해 1월 영국 프로다트협회도 다트 선수들을 경기장으로 안내하는 ‘워크 온 걸’을 경기장에 세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흐름에 더해 직종 폐지로 여론을 몰고 가 치어리더, 레이싱걸 등에게 직장까지 잃는 피해를 주기 보다는 이들의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여성단체나 여성학자의 지적이 많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협의회 및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치어리더, 레이싱걸 등이 몸을 많이 드러내며 일한다고 해서 성희롱, 성추행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논리”라며 “이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들 직업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피해자 유발론’이며 잘못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권리를 가지고, 인권을 가진 사람인 데 그 사람이 어떤 직종에서 일하던지 간에 폭력이나 침해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것”이라며 “치어리더는 스포츠를 하는 사람과 관람하는 사람을 응원으로 연결해주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어 이 직업의 필요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레이싱걸, 치어리더들의 성적 대상화 문제가 자주 제기되는 데 이 문제를 인권 측면에서 그들에게 어떠한 낙인도 찍는 것 없이 무엇이 불편한 지 얘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그들 스스로 일을 하면서 어느 부분이 허용되고, 어떤 부분이 불편한 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면서 이에 연대하는 것이 여성운동가들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치어리더 심혜성도 지난달 11일 SNS에 올린 글에서 “초상권도, 피해를 입고 피해 입었다고 말할 권리도, 피해자가 될 권리도 그 어떤 인권도 없는 우리일지도”라며 자신들의 인권이 침범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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