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력'을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해온 신화 앞에서 '펜은 곧 페니스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야 했던 여성의 역사는 길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규정하는가'라는 권력에 대한 물음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항변도 이미 존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여성-창작-새로움'의 의미망을 확장·갱신하기 위해 도전하는 동시대 젊은 여성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신문이 공동 기획한 이 인터뷰는 문화연구자 오혜진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함께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 여성신문 공동기획
[‘여성-창작’을 말하다]<끝>
‘이쁘고 강하고 야망 넘치는’ 트랜스젠더 뮤지션
<Sarah>·<moves>·<rcts>의 전자음악가 ‘키라라’를 만나다

<‘여성-창작’을 말하다> 인터뷰 시리즈를 처음 기획했을 때, 일면식도 없는 뮤지션 키라라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다. 오색찬란한 키라라의 무대처럼 이 인터뷰의 첫 시작이 화려하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키라라는 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고, 나 역시 더 매달리지 않았다. 광장에 트랜스젠더 혐오언설이 가득한데, 용기를 내보라고 그를 설득할 자신이 내겐 없었다. 물론 부끄러웠다. 그렇게 손쉽게 섭외를 포기한 것이.

그런데 내가 그렇게 뼈아픈 후회의 시간을 보낼 즈음, 키라라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키라라는 결국 마음을 바꿔 기꺼이 우리의 마지막 인터뷰이가 돼 주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 12월 6일, 우여곡절 끝에 만난 우리는 어색해할 틈도 없이 빠르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016년 <변칙 판타지> 공연에서 키라라와 작업한 적 있는 미술작가 정은영이 동석해 우리의 대화를 도왔다.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지난 6일 서울 상수동 카페 무대륙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후 독자들에게 새해인사를 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지난 6일 서울 상수동 카페 무대륙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후 독자들에게 새해인사를 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눈꽃 마크와 청하 두 병, ‘이쁘고 강한’ 키라라의 무대

오혜진(이하 ‘오’): 키라라의 무대는 “키라라는 이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멜로디는 이쁘고 비트는 강하다’라는 음악적 해석, 성소수자로서 ‘이쁘지만 강하게 살아남겠다’는 존재론적 해석이 있더라고요.

키라라(이하 ‘키’): 저는 제 음악에 대한 장르적 규정을 싫어해요. ‘이쁘고 강하다’라거나 ‘울면서 춤추는 음악’ 같은 말은 제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만든 말이에요. 일단 저 자신이 ‘이쁘다’고 우겨보고 싶고요. ‘강하다’라는 건, 제 의지에 대한 표현이에요.

오: ‘한잔의 룰루랄라’나 ‘무대륙’ 같은 홍대 근처 소규모 카페에서 자주 공연하셨죠. ‘한잔의 룰루랄라’가 곧 영업을 종료한다는데, 무대의 안정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실 것 같아요.

키: 어렸을 때부터 홍대 씬을 동경했어요. 하지만 막상 홍대 씬에 나와 보니 ‘인디문화의 메카’라던 그곳은 이미 쇠락해가고 있었죠. ‘무대륙’은 제가 데뷔한 장소이고, ‘한잔의 룰루랄라’는 제가 어릴 때부터 매일 술 먹고 놀던 집 같은 공간인데, 저는 이 작은 공간들에 계속 소속되고 싶어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애정을 놓고 싶지 않아요.

오: 키라라의 무대 세팅은 늘 인상 깊어요. 화면에 키라라를 상징하는 눈꽃 모양의 로고가 나오고, 키라라는 관객에게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청하 술병을 든 채 춤추는 자신의 옆모습을 보여주죠. 관객과 마주보며 소통하는 다른 DJ들과 달라요.

키: 저는 음악을 선곡해서 트는 DJ가 아니라 제 창작물을 연주하는 음악가에요. 관객에게 제 음악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늘 고민합니다.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짠’ 하고 치면 소리가 ‘짠’ 하고 나잖아요. 반면, 전자음악가는 아무리 기계를 누르고 돌려도 관객에게 그게 뭐하는 건지 잘 전달되지 않죠. 그래서 음악을 즐기는 저의 몸을 보여주는 거예요. 기계 뒤에 서기보다 옆으로 서야 제 몸의 움직임이 관객에게 더 잘 보이죠.

오: 만화경처럼 몽환적인 화면이 화려한 색깔의 로브를 걸친 키라라의 몸을 스크린 삼아 비칠 때 키라라의 무대는 일종의 환영(幻影) 같아요.

키: ‘케미컬 브라더스’나 ‘코넬리우스’ 같은 뮤지션들처럼 저도 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무대를 꿈꿔왔어요. 저는 제 음악에 나오는 소리와 영상에 나오는 오브젝트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영상을 좋아해요. 음악이 ‘쿵짝쿵짝’ 나오면 영상에도 그 ‘쿵짝쿵짝’이 보여야 해요.

‘1인칭’의 고민을 함께 나눌 퀴어 뮤지션 동료

오: 성장과정이 궁금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Rateen)’에서 활동하셨죠.

키: ‘라틴’은 청소년을 포함해 여러 연령층이 모여 LGBT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에요. 저는 17살 때 가입했고 지난 8월까지 2년간 운영진으로 활동했습니다. 트랜스젠더로서 먹고사는 문제, 군대나 수술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 회원들의 상담쪽지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그 일에 대단한 사명감을 가졌다기보다는 이 카페에 진 빚을 갚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들의 수많은 넋두리들이 없었다면 저는 살지 못했을 거예요.

오: 작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에서 수상하셨죠.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성소수자’라는 네 글자를 발음하지 못한 게 끝내 아쉬우셨다고요. 그래서 올해 같은 행사에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성소수자가 EBS에 나오면 편집되는 것으로 아는데 제가 나와도 되나요?”라는 뼈 있는 농담도 하셨습니다. 올해 발표한 정규앨범 <Sarah>도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라고 들었고요. 뮤지션 키라라에게 퀴어 정체성은 어떤 의미일까요?

키: 저는 트랜스젠더이기 전에 먼저 음악가이고 싶어요. 제가 음반이나 무대에서 성소수자 이야기를 하는 건 제 작업이 제 삶으로부터 나왔다는 걸 설명하고 싶어서입니다. 퀴어 뮤지션으로서의 특별한 자의식을 갖고 있진 않아요. 제가 있는 음악 씬에서는 누구도 저를 ‘퀴어음악가’라고 부르지 않거든요. 여긴 아예 ‘퀴어’라는 인식의 범주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퀴어에 대한 오해나 고정관념 같은 대중적 코드조차 없어 보여요.

오: ‘퀴어 동료 뮤지션을 만나고 싶다’고도 하셨는데,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세요?

키: 지금 네이버에 ‘키라라’를 검색하면 나오는 인물정보 사진을 제대로 찍은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고 싶거든요. 그래서 해당 포털에 연락했더니 신분증을 보내래요. 그럼 제 요청은 늘 반려되죠.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제 성별과 신분증 상의 제 성별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일상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할 동료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제가 트랜스젠더로서 공격받는다면 그때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랍니다. 트랜스젠더는 꼭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소외돼서가 아니라, 그냥 거울 앞에 혼자 있어도 우울한 사람이에요. 사람들 ‘간의’ 문제가 아니라 ‘1인칭’의 문제가 있죠.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가 제 옆에 있어준다면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지난 6일 서울 상수동 카페 무대륙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밝게 웃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서울 상수동 카페 무대륙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밝게 웃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키라라의 ‘뿌수는’ 음악과 트랜스 미학

오: ‘요즘 퀴어 인권에도 순서가 있는 것 같다’라는 말씀하신 적 있죠. 게이・레즈비언 등에 비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얕고 혐오도 심한 세태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어요.

키: 그건 트랜스젠더를 공격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언설을 접한 후 한 말이에요. 제가 정말 퀴어 인권에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믿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을 비꼬고 싶어서 한 말이에요. 저 자신에 대한 씁쓸한 자조이기도 했고요. 지금 제가 얼굴을 노출하며 <여성신문>과 인터뷰하는 건 그런 트랜스젠더혐오 분위기에 대한 반격이기도 해요. 사실 저는 “죽지 말고 살아라” 같은 트랜스젠더 친구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말 정도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로서 받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또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겠죠. 더 잘 말할 수 있게 내공을 쌓아야겠어요. 지금 제가 가사 없는 음악을 만드는 건 스스로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일 거예요.

정은영(이하 ‘정): 가사가 있으면 메시지가 과도하게 명백해지고, 그 ‘의미’에 몰입하느라 음악적 ‘형식’에 대한 도전에 소홀해지기 쉽잖아요. 키라라는 가사보다는 새로운 음악적 형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트랜스’적인 의미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 저도 키라라가 기존 음악을 ‘뿌수고’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음악들이 트랜스의 미학과 상통한다고 생각해요. 이때 ‘트랜스’는 섹슈얼리티의 차원이기도 하고 음악적 차원이기도 한데요.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작업들을 끊임없이 ‘뿌숨’으로써 이 세계에 ‘완전무결한 원본’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정: 당사자의 경험을 반복하는 데만 안주하는 퀴어미학은 나태해요. ‘지보이스’(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소모임 게이코러스)는 아마추어 음악가로로서 본인들의 스토리텔링에 기댈 수 있지만, 키라라는 프로페셔널 뮤지션이니 새로운 미적 형식을 개발해야죠. 그런 면에서 키라라와 지보이스의 미학은 근본적으로 다를 텐데, 그럼에도 키라라가 지보이스와 흔쾌히 협업하는 걸 보고 키라라에게 책임의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사 없는 노래 ‘떼창’하기, 혹은 울면서 춤추기

오: ‘지금까지 우주음악을 했다면 이제 지구음악을 하겠다’라는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어요.

키: 지금까지 제게 음악은 제가 트랜스젠더라서 겪는 온갖 고통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도피처였어요. 세상을 떠나기 위한 것이었죠. 이제는 세상 안에서 음악을 하고 싶어요. ‘나는 트랜스젠더니까 사람들은 내 말 못 알아들을 거야’라고 손쉽게 생각해버리지 않고, 제 마음을 더 열고 싶다는 의미에요.

정: 몸에 새겨진 우울이 근본적인 슬픔일 텐데, 달리 생각하면 트랜스젠더의 몸은 지배적 규범에 순응하지 않기 위한 저항의 자원일 수도 있죠.

오: ‘자기 몸과의 불화’는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한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여성으로 인식되는 사람도 ‘내 가슴은 왜 작을까’라고 절망하면서 더 ‘여성스러운’ 몸을 갖기 위해 각종 보정속옷이나 장치를 동원하잖아요. 자신의 ‘생리하는 몸’ ‘임신하는 몸’이 싫은 여성도 많고요.

키: 제가 아는 어떤 트랜스젠더가 “우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투쟁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그렇게 보면 전 살면서 해본 게 투쟁밖에 없는 거죠. 어차피 계속 투쟁하는 삶이라면 더 유효하게 싸우고 싶긴 해요.

정: 특정 젠더에 걸맞은 특정한 몸이 정해져 있다는 듯, 몸・젠더・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것이라고 믿는 건 몸의 실제 경험과 무관한 규범적 인식일 뿐이죠. 키라라가 그 규범적 인식과의 싸움을 음악적으로 아주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미술에서는 타자적 경험이야말로 새로운 미적 형식을 만들 자원이라고 보거든요. 키라라가 자기도 모르게 ‘울면서 춤춘다’는 감각을 체현하고 있는 것처럼요.

키: 세상을 떠난 제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 중 ‘Wish’라는 곡이 있어요. 쇼케이스 때 보니, 사람들이 가사도 없는 그 노래의 멜로디라인을 ‘빠-바-’ 이렇게 따라 부르더라고요. 저는 공연 때 관객은 보지 않고 혼자 울면서 춤추는 사람인데, 그때 처음으로 제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꼭 혼자 우울한 인간일 필요는 없겠구나’ 생각했죠. 이렇게 음악과 함께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키라라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키라라’라는 이름의 뜻을 밝힌 적 없다. 그건 대중적으로 더 널리 말할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넌 남자냐 여자냐’ 같은 유치한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불사하겠다고 했다. 키라라는 이렇게 야망 있는 MTF(Male To Female. 트랜스여성) 트랜스젠더 뮤지션이다. 우리는 왜 이 전도유망한 뮤지션의 비밀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속절없이 놓치고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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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신문사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연구자 오혜진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함께 진행한 <‘여성-창작’을 말하다>(총10회) 인터뷰 연재를 마친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의심스럽다. 서로 다른 열 팀의 개성과 열정을 담기에 ‘여성’과 ‘창작’이라는 말이 너무 좁고 딱딱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기대한다. 언젠가 그 단어들이 우리의 신체와 마음이 경험하는 쾌락과 분투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한 ‘가능성’의 언어가 되길.    

* 키라라: 전자음악가. 2016년에 정규앨범 <moves>로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 세 번째 정규앨범 <Sarah>를 발표했다.

키라라의 공연 영상이 궁금하다면? ▶ https://youtu.be/JCbsRPJ-8yQ

문화연구자 오혜진
문화연구자 오혜진

* 오혜진: 문화연구자.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등의 책과 평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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