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페미니즘 이슈가 사회 전면에 부각된 한 해였습니다.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바꾸자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고 불법촬영 근절을 요구하는 ‘혜화역 집회’에는 7만명의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지난해 불붙기 시작한 낙태죄 폐지 요구는 더욱 거세졌으나 헌법재판소는 사회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10년 만에 재개된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열망은 커졌으나, 이 과정에서 평화와 안보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성신문이 선정한 10대 뉴스를 통해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미투, 물꼬터지다

성폭력에 대한 침묵의 금기가 깨지자 경악할 만한 증언들이 쏟아졌다.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종교계를 가릴 것 없이 제보와 폭로가 끊이지 않았다. 2018년 1월 29일,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시발점이 돼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증언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10월 ‘#OO_성폭력’으로 시작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은 #미투와 만나며 더욱 불이 붙었다. 고은 시인 등 ‘문단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고발이 이어졌고, 연극계의 도제식 교육과 철저한 집단주의가 이윤택 등이 절대 권력을 쥐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투 운동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스쿨미투’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성별 임금격차를 비판한 ‘페이미투’로도 이어졌다. 미투가 빠르게 확산되자, 무고 등으로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저항’도 거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앞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남북정상회담 재개… 여성 리더십은 부재

올해는 한반도에 평화의 씨를 뿌린 한 해였다. 4월 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 남측 구역인 자유의 집에서 손을 맞잡았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10년 6개월 만의 정상 간 만남이었다. 남과 북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을 선언하며 남북 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만들었다. 5개월 뒤인 9월 19일에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선언에는 남북의 적대관계 해소, 민족관계 균형적 발전을 위한 실질적 대책, 이산가족 문제 해결, 다양한 분야의 협력·교류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평화와 안보는 여성의 삶에 맞닿아 있는 중요 의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을 논의한 남북정상회담은 평화를 향한 긴 여정의 첫 걸음인 셈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북측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 등이 전면에 나서며 리더십을 발휘한 반면, 남측 여성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5월 19일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열린 첫 번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혜화역에 모인 7만 여성의 분노

불법촬영 범죄와 경찰의 편파 수사를 규탄하며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5월 19일 서울 혜화역 인근 광장에서 열린 첫 번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1만2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고, 다음 달 열린 2차 집회에는 4만5000명, 8월에는 7만명이 광장을 메웠다. 집회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 단일 성별로 구성된 시위 가운데 역대 최다 인원이 모인 것으로 기록됐다. 주최 조직부터 기존 집회와 달랐다. 지난 5월 ‘홍대 몰카 사건’을 계기로 익명의 ‘총대’(대표자)가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 ‘불편한 용기’를 개설하고 자체적으로 집회 준비에 참여할 100여명이 운영진으로 모였다. 집회 소식을 온라인에 알리자 불법촬영 문제와 사회 전반의 성차별에 분노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이 집회에 참여했다.

참가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주최 측이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 대상을 제한해서다. 현장 스태프들이 사진을 찍으려는 남성을 제지했고, 초기에는 ‘생물학적 남성’ 취재진도 폴리스라인 밖에서만 취재가 가능했다.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이 직접 현장을 찾았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에 내 자신도 포함된다. 내 책임이 크다”며 불법촬영 단속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 살겠다, 박살내자’를 열어 참가자들이 3부 마무리 집회에서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안희정도 유죄고 사법부는 유죄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월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집회 참가자가 “안희정도 유죄”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판결

지난 3월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설파하던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8월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심 선고공판에서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핵심 쟁점은 ‘위력’ 여부 였다. 재판부는 위력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에서 위력의 정의를 보면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는 유형적·무형적인 힘'을 뜻한다. 물리적 폭력 뿐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도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내부에서도 위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피해자가 즉각 저항하지 않은 점을 재판부가 무죄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고, 위력을 입증할 수행비서 매뉴얼 같은 증거도 재판부는 무시했다. 재판 과정과 언론 보도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9명의 여성 변호사가 김지은씨를 법률 대리하고 있다.

법 따로, 현실 따로 채용 성차별

법으로 금지된 채용 상 성차별이 대기업에서 조차 공공연히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KB국민은행은 2015년 상반기 채용과정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남성 지원자 100여명의 서류 전형 점수를 여성보다 높게 준 사실이 밝혀졌다. 112명의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낮춰 불합격시킨 것이다. 하나은행은 2013~2016년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 남녀 채용비율을 4대 1로 설정해 성별에 따라 별도 커트라인을 적용한 혐의를 받는다. 신한은행도 2013~2016년 남녀 성비를 3대 1로 임의로 맞춰 총 154명의 서류전형과 면접점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공공기관까지 채용에서 성차별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법은 채용 성차별을 ‘벌금형’으로만 처벌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는 성차별 채용이 드러나면 대표이사 등 임직원들을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로 인해 채용 성차별을 한 KB국민은행은 재판에서 벌금 500만원만 선고 받았다. 전문가들은 채용 성차별 근절을 위해 △해당 사업주 처벌 및 제재 강화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 △기업 관리·감독 조직 전담기구 설치 등을 제안한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여성가족부가 11월 21일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2015년 12월 일본 정부와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이듬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출범한 지 28개월 만에 해산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게 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이라는 피해자 중심 원칙에 따른 것이다. 재단은 출범 전부터 해산과 일본 출연금 반환 문제로 논란이 됐다. 이사진 구성, 사업 방향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생존 피해자 34명과 사망자 58명에게 치유금 44억원을 지급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정부가 일본이 출연한 10억엔을 전액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결정했다. 이사진 중 민간인들도 모두 사퇴하면서 재단은 사실상 운영이 중단됐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해산에 필요한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기준 57억8000만원이 남아있는 재단 기금은 피해 당사자,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처리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페이스북 사과 받아낸 ‘불꽃페미액션’

6월 2일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이 페이스북을 향해 여성의 몸을 음란물로 규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앞서 이들이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상의 탈의 퍼포먼스 사진이 ‘‘나체·성적행위에 관한 게시물’이라며 일방적으로 지워졌다. 페이스북은 1개월 계정 정지 처분까지 내렸다. 남성들의 상의 탈의 사진은 그대로 둔채 여성 사진만 지운 ‘성차별 징계’ 였다. 지워진 사진은 남성의 나체는 ‘보편 인간의 몸’으로 인식되지만 여성의 몸에는 “남성중심적 아름다움과 음란물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에 항의해 상의를 탈의한 퍼포먼스 현장이 담겨 있었다. 시위 직후 페이스북은 사진을 복구하고 사과했다. 상의 탈의 시위가 ‘너무 급진적이라 불편하다’는 시선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은 다르다. ‘여성의 몸은 음란물도 성폭력의 대상도 아니며, 여성의 몸의 주인은 여성이라는 급진적인 선언’이라는 평가다.

저출산 대책 ‘성평등’으로 패러다임 바꾸다

정부가 12월 7일 ‘성평등 구현’을 저출산 대응정책의 목표로 삼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동안 ‘합계 출산율 1.5’를 앞세운 출산 장려 위주의 대책에서 벗어나겠다는 각오다. 정부는 지난 12년 동안 출산율 제고를 정책 목표로 삼고 116조원의 정책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출산율이 오히려 ‘1명 이하’로 곤두박질 치자, 그간의 기본계획을 뒤엎고 새로 쓴 것이다. 이번 정책 로드맵은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사회'를 비전 아래 △삶의 질 향상 △성평등 구현 △인구변화 적극 대비를 목표를 설정했다. 또 임금·채용 차별 없는 성평등한 일터, 비혼 자녀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 남성이 육아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함께 돌보는 사회를 핵심 과제로 삼고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2018년 9월 29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 기념 ‘269명이 만드는 형법 제269조 폐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8년 9월 29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 기념 ‘269명이 만드는 형법 제269조 폐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높아지는 낙태죄 폐지 목소리, 응답없는 헌재

형법상 ‘낙태죄’를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결정권을 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묵묵부답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의사 A씨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 1항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270조 1항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임신중절을 해준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헌재는 지난 5월 낙태죄 위헌 여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었지만 선고는 미뤘다. 유남석 신임 헌법재판소장이 청문회에서 낙태죄 폐지 관련 헌법소원을 연내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낙태죄 폐지’를 요청한 청원에 23만명이 참여했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시위가 수차례 열렸지만, ‘낙태죄 위헌’ 결정은 또 다시 해를 넘기게 됐다.

 

여성 예능인, 날개 펴다

이영자, 박나래, 김숙, 장도연. 올해 방송가를 뜨겁게 달군 예능인 중에 맨 처음에 불리는 이름들이다. 불과 1~2년 전 설 자리조차 없었던 여성 예능인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하며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스타와 매니저의 일상을 담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하는 이영자씨는 데뷔 이후 30년간 쌓은 연륜으로 프로그램 분위기의 이끈다. 구수하고 섬세한 설명, 실감나는 표정과 몸짓은 시청자를 ‘이영자식 먹방’에 빠져 들게 했다. 1인 가구 스타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MBC ‘나 혼자 산다’는 박나래씨의 ‘무대’다.

예능 프로그램은 그동안 ‘남성들의 잔치’였다. 1~2년 전까지 남성 MC와 남성 출연자로만 이뤄지던 프로그램이 대세였다. ‘벽’을 깬 것은 송은이, 김숙씨였다. 두 사람은 지난해부터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컨텐츠를 만들어 유통했다. 송은이씨가 기획한 ‘김생민의 영수증’이 KBS2에 ‘섭외’되고 인기를 얻으며 여성 예능인들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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