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천국’ 유럽에서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
성평등 복지모델 만든 스웨덴
남성 육아휴직제도로
여성경제참가율·출산율 높여
노인빈곤율 세계 최저 네덜란드
노령연급 수급 나이 계속 높여
모두 수십 년 걸친 토론과
국민적 합의가 중요 토대

네덜란드 치매마을 호그벡에서 거주자들이 장을 보는 모습. 네덜란드에서는 66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노령연금이 지급된다. 혼자 사는 노인은 월 1180유로(약 152만원), 부부는 각각 814유로(약 105만원)를 받는다. ©호그벡
네덜란드 치매마을 호그벡에서 거주자들이 장을 보는 모습. 네덜란드에서는 66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노령연금이 지급된다. 혼자 사는 노인은 월 1180유로(약 152만원), 부부는 각각 814유로(약 105만원)를 받는다. ©호그벡

‘더 내고 더 받는’ 구조의 국민연금 개편 정부안이 나왔다. 정부가 네 가지 안을 한꺼번에 내놓으면서 국민적 합의까지는 여러 난관이 예상된다. 14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크게 현행 유지안과 기초연금 강화안을 나눌 수 있다. 현재 연금세대 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고려하면 4개의 선택지 중 어느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 숙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보다 반세기 앞서 사회보장제도를 시작한 유럽도 우리와 비슷한 진통을 거쳤다.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토론과 논의를 통해 연금 수급연령을 높였고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무엇보다 정부가 여론 뒤에 숨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강·약점 모두를 솔직히 알리며 숙의를 통해 합의를 이끄는 주체로 나섰다. 우리도 ‘한국형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첫 단계에 들어선 만큼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60년대부터 젠더 불평등
줄이는데 역점 둔 스웨덴

지난 10월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3개국의 사회보장제도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가장 먼저 찾은 스웨덴은 우리에게 ‘라테파파(latte papa)의 나라’로 불린다. 라테파파는 한 손에는 유모차(유아차)를, 또 다른 손에는 카페라떼를 든 스웨덴 아빠를 뜻하는 말로, ‘평등육아’를 실천하는 남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스톡홀름 거리에서 평일 오후에도 유아차를 끄는 남성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스웨덴도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 부양을 전담하고, 아내는 피부양자로서 집에서 육아와 가사만 전담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유지한 가부장적인 나라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저항과 요구가 제도 변화로 이어진 케이스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 붐이 일면서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해졌고 정부는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길 원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해지니 아이를 맡길 보육기관이 발달했다. 이어 여성도 똑같이 일을 하는데도 육아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여성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당시 2.4명에 달했던 스웨덴 합계출산율도 1969년부터 2.0명 아래로 떨어졌고 1999년에는 1.5명까지 추락했다.

스웨덴이 출산율 반등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올리기 위해 선택한 정책은 남성 육아휴직제 도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남성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1974년 여성만 쓸 수 있는 출산휴직을 없애고 부모 모두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은 여성보다 현저히 적었다. 남성들의 육아 참여를 늘리위해 1991년 정부는 ‘남성만 쓸 수 있는 육아휴직’으로 30일 가량의 기간을 할당했다. 이 할당량은 그 뒤 90일까지 늘어났고 남성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빠르게 올랐다. 출산율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1.9명 수준에 오른 뒤 20년간 큰 변동 없이 지금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의 니클라스 러프그렌 대변인은 “1960년대부터 노동조합과 사용자조합이 성별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했고 그후 20여년 동안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앞서 살펴본대로 스웨덴이 저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평등 관점을 녹인 가족정책이 있다. ‘성평등’과 ‘일·가정 양립’을 정책 목표로 삼고 30년 이상 꾸준히 정책을 발전 시키자, 자연스레 출산율 반등이 따라왔다. 스웨덴은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보고서’에서 단 한번도 4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반면 한국은 118위로 꼴찌 수준이다.

네덜란드는 2021년부터
67세 이상 노령연금 받아

네덜란드는 전체 인구 약 1700만명 가운데 50세 인구가 40% 이상 차지하는 고령화 국가다. 하지만 노인 빈곤율은 1.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노인도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기초연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66세 이상의 모든 노인은 노령연금을 받는다. 그 규모가 전체 인구의 17%(300만명) 정도다. 네덜란드에 50년 이상 거주했거나 소득 활동을 한 노인이라면 혼자 사는 노인은 월 1180유로(약 152만원), 부부는 각각 814유로(약 105만원)를 받는다.

네덜란드도 기초노령연금의 수급 연령을 늦추는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역시 재정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당초 65세에서 올해 66세로, 2021년에는 67세 3개월로 늦춰졌다. 매년 기대 수명 등을 평가해서 연금 수령 연령을 결정하는데, 보통 4년 후의 연금 수령 나이까지 미리 결정한다.

이 결론에 이르는데 20년이 걸렸다. 1990년대 기독교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연금개혁을 꺼냈다가 선거 때 보수당이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5년 뒤에는 중도 좌파가 집권하면서 또 이 이슈가 거론됐다. 경제 위기와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대가 조금씩 생기면서 타협점을 좁혀갔다.

네덜란드 국민은 소득의 최대 52%를 세금으로 낸다. 보험료에 대한 불만은 없을까. 빔 베르벤 네덜란드 사회보험은행 전략 및 대외관계 부문 담당 매니저는 “당연히 불만이 있지만, 당연히 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안정적인 연금체계의 힘은 ‘사회적 공감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1950년대에 사람들은 안정적인 노후를 원했고, 직역연금은 노동자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요구가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현재 네덜란드 고용인구의 90%가 직역연금에 가입돼 있다. 노인의 80% 정도가 노령연금과 직역연금을 동시에 받고 있다. 모두 함께 많이 내고, 대신 많이 돌려 받자는 사회적 합의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노인 빈곤율로 이어졌다.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개혁은 피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제도가 맞물리고 국민 전체 이해관계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사회적 합의 절차를 밟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에게 제도에 대해 적극 알리고 이해시키는 설득 과정이 합의를 이끌어내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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