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근무가 생활혁명?…혜택은 남성만

가사노동 분담 사회적 공감대 만들어야

풍경① 토요일 오전. 송희숙(35. 회사원. 서울 북아현동)씨는 싱그러웠던 대학시절의 낭만을 만끽해보자는 생각에 온 가족과 춘천으로 향했다. 도심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물길을 헤치는 유람선과 주변경관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진경산수를 연상케 하는 춘천을 상상하며 경춘선을 탔다. 하지만 예상외로 차는 밀리고 어젯밤 밀린 빨래며 집안 일에 지쳐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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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원 개발시간은 사치? 맞벌이 주부는 주말에도 아이들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민원기 기자>

“도착했다고 깨우는 남편의 목소리에 참 황당했다. 여행이란 도착지의 경관도 중요하지만 가는 동안 느끼는 감정, 추억을 되새겨 보는 회상 등 가면서 누릴 수 있는 그 설레임이 더 좋은데, 항상 이렇다”며 송씨는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는 피곤함에 매번 여행을 망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송씨뿐이랴. 주5일 근무제가 아니더라도 맞벌이 여성들에게 주말은 밀린 집안 일을 ‘해치우는’시간이다.

풍경②아홉 살 딸을 둔 김경희(34. 학원 강사. 서울 미아4동)씨는 학원강사 경력 10년차의 커리어우먼이다. 김씨는 직업 특성상 주5일제 얘기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주5일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주말에 부족한 영어회화 공부하고 가끔 여행을 다니는 낭만적인 계획을 세워본다. 그러나 말 그대로 낭만일 뿐이다.” 김씨가 주말 계획에 대해 ‘낭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의 학교 공부 챙기랴, 집안의 대소사 챙기랴, 오히려 평일보다 바쁜 주말을 보낸다”며 “시댁에서는 주말에 쉰다고 며느리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주말에라도 자기와 함께 보내야 한다고 보채는 실정”이라고 한다. 김씨는 은행에 다니는 남편이 “예전 같으면 일요일에 하루종일 잠만 잤는데 요즘은 주말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욱 화가 난다고 한다. “예전에는 토요일까지 일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가사 일은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5일제가 되면서 무슨 모임, 무슨 활동 등 열심히 나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뭔가 하는 허탈감에 빠진다”며 상대적인 소외감이 더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송씨와 김씨처럼 맞벌이 주부들에게 있어 주5일 근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귀중한 시간만이 아니다. 가사노동이라는 또 다른 복병이 숨어있어 이 복병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장소에서의 ‘일’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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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주부라고 가사일 줄지 않아

한국여성개발원의 2001년 보고서 〈여성 무급노동의 경제적 평가와 정책방안〉에 따르면 주부가 남성에 비해 가사노동량이 크게 많으며, 주부의 취업여부가 가사노동의 경감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여부별로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을 보면 여성은 취업한 경우 2시간 50분, 취업하지 않은 경우 5시간 13분이다. 하지만 남자는 취업한 경우 26분, 취업하지 않은 경우 53분으로 취업한 여자의 가사노동시간이 취업하지 않는 남자보다 2시간 정도 길다. 이는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가사노동 부담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 반면 남자는 경제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가사 일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맞벌이 주부의 전체 노동시간(가사노동시간 + ‘일’한 시간)이 남성들에 비해 상당히 길어 이들의 가사노동을 줄이는 방안이 국가 정책적으로 요구된다. 더구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가사노동시간이 같은 정도로 비례해서 감소하지 않아 주당 근로시간이 많은 여성일수록 전체 노동시간의 부담이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54시간 이상 일하는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 42분으로 하루에 전체 노동시간이 11시간 정도이다. 반면 같은 경우의 남자는 24분으로 나타났다. 〈표 1〉

이기영씨의 2001년 논문 〈국민생활시간 활용의 국제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맞벌이 주부가 얼마나 많은 노동을 부담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표 2〉

직장·집안일 하루 538분

한국 맞벌이 주부의 경우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을 합해 하루에 538분 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450분, 핀란드는 465분으로 하루에 1시간 30분 정도 노동시간이 적게 나타난다. 일본 맞벌이 주부의 전체 노동시간은 한국에 비해 48분 적게 나타났다. 이는 일본 맞벌이 주부의 1일 가사노동시간이 한국보다 19분 긴 것에 비해 경제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한국보다 짧기 때문에 전체 노동시간은 한국 여성이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여성의 경우 파트타임 종사율이 높은 반면 한국 여성은 전일제 취업자가 많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체적으로 4개 국가의 12개 집단을 비교했을 경우 한국 맞벌이 주부의 전체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미국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262분에 비교했을 때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남성은 경제활동시간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가사노동으로 인해 전체 노동시간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한국, 미국, 핀란드의 취업남성은 각각 456분, 452분, 453분으로 유사한 수준이며, 일본의 취업남성이 다른 남성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나타났다.

취업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이 가사노동의 부담으로 개인 개발에 할애하는 시간에서도 성별차이가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2001년에 발표한 〈1999 생활시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교제 및 여가활동 시간을 요일별로 보면 평일에는 남자가 17분 길지만 그 차이는 점차 늘어나 토요일은 35분, 일요일은 1시간 23분으로 남녀격차가 심하게 벌어진다.

주말은 ‘그들만의 휴일’

이는 일요일과 같이 여유시간이 있을 경우에도 여성들의 가정관리시간과 가족 보살피는 시간은 미미하게 감소하거나 오히려 증가한다. 반면 남성들은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고, 대신 개인적인 교제 및 여가활동이 늘어 성별 차이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표 3〉

문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지식산업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국가경쟁력의 제고를 위해 국민의 인적자원 개발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책이다”라며 “인적자원개발시간에서의 성별 차이는 현재의 성별 차이뿐 아니라 미래의 성별 차이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문 연구위원은 한국의 맞벌이 주부들이 남성들에 비해 전체노동(가사노동과 시장노동을 합한 노동)시간이 1시간 정도 길기 때문에 인적자원개발에 투자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문 연구위원은 “교제 및 여가활동시간의 요일별 변화에 대한 남녀차이는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더욱 커질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주5일제가 맞벌이 주부의 가사노동을 더욱 증가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맞벌이 주부들의 여가시간을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학습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의 분담방안과 더불어 여성의 인적자원개발을 장려하는 분위기 형성이 요구된다.

동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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