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

대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 의견과 무관합니다. <편집자주>

호미로 막을 것을 작은 숟가락으로 막는 법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 보면 ‘커지기 전에 처리하였으면 쉽게 해결되었을 일을 방치하여 두었다가 나중에 큰 힘을 들이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에 영어 선생님께서 저에게 특별한 과제를 주신 적이 있습니다. 영어 문제집을 하나 주시면서 풀어 보고,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풀어 볼만한 괜찮은 문제를 선별해 오라는 과제였습니다. 일종의 수업 준비 조교와 같은 역할을 주셨던 것이지요. 저는 아직 어린 나이에 선생님의 수업을 보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하기도 너무 싫어 졌습니다. 지금 정확하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였을 수 있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과제를 안 하고 뭉갰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영어 선생님을 피해 다녔습니다.

영어 선생님은 “과제 잘 하고 있니?” 라고 여러 번 점검하셨습니다. 저는, 차마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 하고 “네, 다 마치면 말씀 드릴께요.”라고 자꾸 미루면서 면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수업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공개적으로 “조은정, 그 과제 제대로 못 한 거 아냐? 제대로 못 했으면 내게 문제집 돌려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화가 나셨지요. 저는 아무 말씀도 못 드리고 문제집을 돌려 드렸습니다. 그 선생님의 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선생님은 다른 학생에게 과제를 맡기셨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그 학생은 고생을 하였을 겁니다.

입사 후 어느 날, 부서 동료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수영장에서 다쳤다고 합니다. 다행히 중상은 아니어서 치료 후에 귀국하는 수준에서 소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수영장에서 부상당한 직원이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왜 야단을 맞았을까요? 출장 중에 업무에 전념하지 않고 수영장에서 놀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단맞은 이유는, ‘사고 후 즉시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였습니다. 어떤 사고가 있건 이슈가 있건 바로 상사에게 또는 인사팀에게 또는 본사에 보고해야 하는데, 그 동료는 자기가 처리하느라고 병원에 혼자 가고 부상당한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직원도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겠지요. 그런데, 출장 중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사고 소식을 숨겼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직원만이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할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잘 못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을 숨기고 싶어 하지요.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내가 혼자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은 해결되지 않고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1. 내가 맡은 업무나 조직에서 이슈가 발생하면 절대 내가 혼자 해결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말고 상사에게 또는 인사팀에게 공유한다.

그렇게 하면 저는 여러 사람의 지원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호미로 막을 것을 호미보다 더 작은 숟가락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슈를 공개하는 순간, 저의 책임은 조금 덜어집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훨씬 가볍기 때문입니다.

  1. 나와 같이 일하는 후배가 업무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이슈를 ‘들키기 전에 미리 스스로’ 제게 말하면 (일종의 자수인가요?), 저는 절대 야단치지 말고 담담하게 대응하고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

이런 상황을 경험한 후배들은 자신의 뒤에 든든한 방어막이 있다는 것을 믿고 업무를 더 과감하게 추진하였고, 문제를 숨기지 않고 제게 즉각 즉각 알리고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숟가락은 사용하기 쉽고 문제도 쉽게 해결한다.  @Pixability
작은 숟가락은 사용하기 쉽고 문제도 쉽게 해결한다. @Pixability

현재 속한 조직이 어떤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런 규칙이 없다면 여러 분이 만들어 나가길 권합니다. 이슈가 있으면 빨리 자수하고, 다른 사람이 자수하면 그 사람을 지지해 주고 도와주는 그런 규칙요. 그래야 호미로 막을 것을, 작은 숟가락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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