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중 한 장면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중 한 장면 ⓒ국립발레단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이 찾아왔다. 연말이 되면 아무래도 약간은 들뜬 분위기 속에 가족, 연인·친구 또는 직장동료들끼리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올해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으로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밸’에 대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면서 공연 관람 욕구도 함께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 속에 공연장들 사이에서는 관객유치를 위한 뜨거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가족 단위의 관객이 즐기기 안성맞춤인 중요한 연말 레퍼토리 중 하나. 국립발레단(12월 15~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유니버설발레단(12월 20~30일, 유니버설아트센터), 와이즈발레단(12월 7~9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등 중요 단체들이 큰 틀에서는 같은 내용이나 세부적으로는 저마다 특징이 있는 '호두까기 인형'으로 가족 단위 관객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중 한 장면 ⓒ유니버설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중 한 장면 ⓒ유니버설발레단
가족뮤지컬 '마틸다' 중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가족뮤지컬 '마틸다' 중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애니’와 ‘마틸다’ 등 2편의 가족 뮤지컬 역시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이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이다. ‘애니’(12월 15~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희망을 잃지 않는 유쾌한 고아 소녀 애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보육원을 탈출한 애니와 유기견 샌디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얘기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내일(Tomorrow)’을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노래들을 듣는 맛이 있다.

‘마틸다’(내년 2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는 다섯 살 천재소녀 마틸다의 유쾌·통쾌한 반란을 그린 작품. 마틸다와 친구들은 어른들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폭력에 당차게 맞선다. 마틸다가 혼자의 힘으로 ‘개념 없는’ 부모와 폭력적인 학교 교장의 횡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흥겹고도 따뜻하게 그려냈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보기 좋은 또 하나의 공연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서커스단인 태양의 서커스의 ‘쿠자’(12월 30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현란한 곡예와 대담하기 그지없는 광대들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어우러진다. 외로운 여행자 쿠자는 살 곳을 찾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다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맞닥뜨린 왕, 사기꾼, 소매치기, 성질 사나운 애완견 등 하나같이 우스꽝스럽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화려한 묘기를 펼친다.

성년의 가족이나 연인·친구·직장동료끼리 즐길 수 있는 연말 공연으로는 오페라 ‘라보엠’, 연극 ‘록앤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등이 꼽힌다. 국립오페라단 제작의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12월 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성탄절을 전후한 추운 겨울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연말 공연으로는 제격이다. 꿈과 환상을 갈망하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이 오페라는 감성적인 관현악 선율로 시적 정서를 자극하면서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우정과 시린 사랑을 밀도 있게 전한다.

태양의 서커스의 예술서커스 '쿠자' 중 한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태양의 서커스의 예술서커스 '쿠자' 중 한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극단 제작 연극 ‘록앤롤’(12월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은 체코 출신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유학생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민주화·자유화의 바람이 불던 1960년대 말(프라하의 봄)부터 1990년대 초(무혈 벨벳혁명)까지의 체코와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경시기의 정치·사회적 이미지가 당시의 록앤롤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지금의 중년 관객들에게 젊은 시절의 낭만과 고뇌를 ‘충분히’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연극 안에서 롤링 스톤스, 핑크 플로이드, 그레이트풀 데드, 시드 배럿, 비치보이스, U2 등의 전설적인 록그룹 음악을 만날 수 있다.

국립극단의 '록앤롤' 중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의 '록앤롤' 중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어르신들을 위한 대표적인 효도 공연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새해 1월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는 연말의 남녀노소 관객을 풍자와 해학과 신명의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이 극장식 마당놀이 작품은 곤경에 빠진 남편 춘풍을 기지를 발휘해 구하는 여중호걸(女中豪傑) 부인을 유쾌하게 그린다. 시대를 앞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가치를 조명했던 고전을 국립창극단의 희극 연기 대표주자들이 총출동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최근 제작돼 관객의 관심을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연말 공연으로는 ‘주름이 많은 소녀’(12월 6~30일, 정동극장)가 있다. 진지한 주제를 유희적인 요소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해학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젊은 안무가 류장현이 무대화한 작품. 1인 창무극의 대가 고(故) 공옥진 선생의 삶과 춤을 소재로 해 전통예술과 광대, 더 나아가 한국인의 삶을 무대 위에서 그린다. 공옥진의 춤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광대 인생을 구원의 시(詩)로 해석해 펼쳐낸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작품들 외에도 국립현대무용단의 연말 레퍼토리 공연 ‘댄서하우스’(12월 7~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도 시선을 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무용수들이 무대에 서서 자전적 이야기를 춤과 함께 풀어내는 프로그램인 이 공연의 올해 초대 손님들은 최정상의 발레리나로 뮤지컬, 연극, 라디오 DJ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김주원, 팝핀 댄스에서 현대무용 그리고 비주얼 아트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스트릿 댄서 서일영, 카멜레온 같은 현대무용가 안남근 등 3인이다.

신촌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의 ‘산울림 편지콘서트 - 베토벤의 삶과 음악이야기’(12월 12~30일)는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고 싶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 베토벤의 삶을 박상종·임정은 두 배우의 편지 낭독과 연기, 그리고 아홉 음악가의 현악기와 피아노 라이브연주로 펼쳐낸다.

강일중 공연 컬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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