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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최신식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처녀고 ‘무조건 오래 가게 해주세요’라는 주문을 던지는 것은 아줌마란다. 목욕탕에서 수건을 가리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은 처녀, 당당하게 빨랫감을 들고 가는 사람 또한 아줌마로 불린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방년 만23세로 아직 미혼인 나는 아줌마다.

미용실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그 번잡함과 어수선함 그리고 인내의 고통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미용실에 가기 전에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리 못해도 몇 시간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염색약 냄새를 맡을 각오를 해야 하고 넉넉히 반나절은 비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머리 스타일이 자주 바꿔야 하는 최신식이기보다는 특이하고 나다운 스타일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도 훨씬 이익이다.

목욕탕에서 나는 한번도 수건으로 내 몸을 가려본 적이 없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목욕탕에서는 모두가 벗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그러기 위해 오지 않았는가).

오히려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빨랫감 운운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코미디에 불과하므로 거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특히 아줌마에 대한 이중잣대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낭비하는 아내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알뜰살뜰 절약하는 아내는 칭송을 받지만, 자신의 머리 스타일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는 아줌마는 무식한 것이다. 반대로 누구나 벗고 들어가는 목욕탕에서 기어이 수건 조각으로라도 자신을 가리는 것이 정숙한 처녀의 상징이고, 벗은 것이 당당해야 할 자리에서 당당한 아줌마가 우스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아줌마에 대한 숭고한 희생정신 운운하는 -그래서 더 큰 희생을 강요하는- 무조건적인 예찬이나 지금과 같은 폄하는 이제 그만 하자. 물론 집단의 특성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고 아줌마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줌마라는 집단의 특성을 이중적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대신 우리 사회 모든 집단의 특성을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생각하고 평등하게 사고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 아줌마와 처녀의 차이라는 코미디를 보면서 쓴웃음을 짓고 싶지 않다.

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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