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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03학번 새내기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번에는 ‘영삼’ 학번이라서 ‘바보’ 학번이라고 부른다나. 참 재치가 넘치는 생각들이다. 그나저나 벌써 03학번이 들어오다니 참 감회가 새롭다. 내가 98학번이니 나와는 자그마치 5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이다. 이럴 때면 나도 내년이면 03학번(대학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후배들의 눈초리가 무섭다.

나도 신입생일 때가 있었다. 갑자기 몰아친 IMF 때문에 그렇게도 꿈꾸던 입학 선물도 변변하게 받지 못했고 무슨 인연인지 극소수만이 참여하는 총여학생회의 ‘여학생새로배움터(이하 여새터)’에 참가했다. 남들처럼 안내문만 받아오면 될 것을 책상 위에 조용히 놓여있던 여새터 안내문을 챙겨 온 나는 여학생이면 반드시 다 참가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 인연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그 땐 정말 몰랐다.

여새터에서 게임도 하고 여러 총여학생회 선배들을 만나며 여자들끼리 노는 것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날 술을 마시면서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학 초년 때는 절대 연애하지 말라고’.

나중에 이 말을 되뇌며 땅을 치며 후회할 줄은 그 땐 정말 몰랐다. 그저 일리 있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연륜 있는 한 선배의 뼈에 사무친 충고였다.

여새터를 다녀와서 학과 생활이 시작되자 나는 일부 복학한 남자 선배들에 의해 그저 여새터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총여’로 낙인찍혔다. 선배들이 이런저런 시비를 걸때 나는 그저 합리적인 상식의 선에서 얘기를 했지만 그들에겐 내 말이 무척 급진적인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비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다. ‘유교철학과’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는 이미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페미니스트’였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연의 사슬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운명인 것같다. 여새터에 간 것이나 복학생 선배들과 열띤 토론을 하게 된 것 등의 작은 인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뛰어난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5년간의 대학생활 끝에 내 자신을 자랑스러운 페미니스트로 정의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 들어올 후배들에게 굳이 한 마디 잔소리를 한다면 사소한 인연들을 소중히 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런 인연들이 모여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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