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경 / 한국여성개발원 사회문화연구부 팀장

총리내정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인수위에 보내는 여성계의 긴급 제언은 인수위가 경제쪽에 치우쳐 여성분야를 소홀히 하지 말고 ‘호주제’와 ‘공보육 강화’라는 여성계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라는 것이다. 여성계는 노 당선자의 여성공약에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상징적으로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3명만이 여성위원이라는 점을 꼽는다. 여성 30%할당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한국남성운동협회라는 단체에서 낸 ‘여성부 폐지 위헌소송’은 여성부의 존립근거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는데, 여성부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실질적인 남녀평등을 위한 여성부의 효과적인 기능과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점을 부각시킨다. 그런데 보다 분명한 것은 여성계의 주장과 ‘여성부 폐지 위헌소송’ 사이에 현재 사회변화를 이해하는 극단적인 입장의 차이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경제계획으로 시작했던 산업화 과정과 1890년대와 1990년대의 경제성장, 1997년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정보화, 21세기 한국사회. 여성 이슈에 관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열악한 여성의 현실도 있으며, 학벌이든 성이든 어떤 것에 대해 구애받지 않고 ‘실력’으로 당당해지고자 하는 사회분위기나 여성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모하면서 동시에 산업적 성장에서 과학기술 등을 첨단화하는 전자적 성장을 주도하지 않으면 경제개발국가라는 준 선진국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릴 것이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경제성장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경제성장은 당장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국가는 좀더 주도적으로 사회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비중은 ‘우선 순위’의 문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여성공약에 대한 여론’과 ‘여성부 폐지 위헌소송’을 현실화시켜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여성문제, 여성정책에 대한 전략적 사고이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민주항쟁을 거쳐 민주화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사회운동 측면에서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노동계나 여성계의 목소리는 구체적인 현실과 부합하지 않고 과다하게 주장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현실에서 우리보다 발전된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논의나 캐나다 또는 호주 등에 비유되는 여성정책에 관한 논의가 좋은 예이다. 한 사회의 정책의 현실성은 그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수준에 비례한다.

황당하게 느껴지는 한국남성운동협회의 ‘여성부 폐지 위헌소송’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얻는 것은 그동안 여성계의 여성공약에 대한 주장도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정책적으로 성 평등이 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크게 확산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전략적으로 이제 ‘수’나 ‘형식’에 연연하지 않고 실질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즉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깨고, 실질적으로 일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정책과 여성정책지원체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영문표기 Gender of Equality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부의 목표인 성 평등의 차원에서 볼 때 법적·제도적 조건 개선은 이미 김대중 정부의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때문에 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평등을 위한 실행전략이다.

새 정부의 여성정책 실행전략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전체 국정방향, 신성장과 분권, 분산 등과 함께 점차 여성부가 축소되거나 타 부처와 통합되면서 각 부처에 실질적인 여성정책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우는 것, 그리고 국무총리실에 여성정책조정기구와 청와대에 새로운 여성정책추진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것이 보다 전략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다.

‘여성’이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 실질적인 성 평등 전략으로 매우 효과적일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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