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태, "국민들의 분노 미약해"
"고흐 그림 인간의 고통과 환희, 카타르시스 느껴"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법농단은 헌정 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입니다. 헌법질서를 훼손시키고 삼권분립을 무시한 행동입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너무 미약합니다. 언론도 국민에게 그 심각성을 인지시켜야 합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한양대 캠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박 교수는 1984년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차장과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을 지냈다. 또 2006년부터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국제법상 인권 문제 전문가로 사법 개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진보 법학자로 유명하다.

3년 전 펴낸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의 개정증보판이 올해 출간됐는데 고흐를 사랑하는 법학자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에 박 교수를 만나 최근 현안에 대한 입장과 고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사범농단 사태를 놓고 사법 개혁 목소리를 높이시고 계신데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청와대와 사법부의 거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추궁이 이뤄져야 합니다. 법학 교수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률 교육을 시킬 때 법원 판례를 주로 가르칩니다. 법원 판결이 거래 대상이라면 법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법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도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데 변호사 시험 합격에만 집중하고 비판의식이 부족해 안타깝습니다.”

 

-사법 개혁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역사에 교훈을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헌법재판소 탄핵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국기문란 사태가 일어났지만 수사로 처벌하기엔 한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국민이 준 권한 속에서 존재하는 것 뿐 판사가 주인이 아닙니다. 사법작용에 국민 참여가 필요한 데 배심제 등을 도입해야 합니다.”

 

-로스쿨 설립 후 법학부 폐지에 따른 문제 제기를 하고 계신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로스쿨이 설립된 25개 대학에서 법학부를 폐지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률은 모든 학문의 백그라운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변호사 시험에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시험에 통과하면 변호사가 되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응시자수의 10% 정도로 이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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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상 인권문제 전문가로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준으로 본 한국의 인권 현실은 어떠합니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요. 이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독재정권 하에서 무고하게 잡혀가던 사람들은 이제 없습니다만 보편적 인권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인권문제는 많습니다. 현재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불평등 문제를 극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외국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보장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인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으신 데 법학과 인문학의 공통점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학문에는 원천이 있는 법입니다. 법학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를 규율하는 법과 규범을 공부하는 영역입니다. 이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법학에선 인문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법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법조문과 판례만 외우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법조 부조리, 사법 부정의는 이런 부조화에서 일어난다고 봅니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도 이제 성평등이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법적 관점에선 제도적 개선은 있었지만 실질적 개선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법에 성평등을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선 남성에게 유리한 간접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성평등을 현실화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특정 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인위적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과 관련이 없는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는 책을 어떻게 쓰게 되신 건가요. 고흐를 사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반 고흐는 서양화가 중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압도적 1위입니다. 그의 색감과 붓 터치는 우리 가슴을 뚫고 들어와 심금을 울립니다. 고흐가 화가로 산 것은 10년 정도이고 그림에 빠져 있던 시간은 4년에 불과합니다. 그 기간 동안 유화 900여점 등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림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환희가 느껴집니다. 한마디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요. 별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이런 화가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의 그림은 서로를 위로하고 형제애를 느끼게 합니다.”

 

-고흐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특징이 있다면요.

“고흐가 많진 않지만 여성을 그렸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사랑의 갈망이 컸습니다. 일기장에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절절한 갈망을 표현했어요. 고흐가 그린 몇 점의 누드화가 있는데 그 주인공은 그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누드모델에게 돈을 줄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또한 고흐가 그린 어머니 그림은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림을 통해 엄청난 애정을 표현했어요.”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10월, '어머니의 초상화' ⓒ노튼 사이먼 미술관 ⓒⓒ노튼 사이먼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10월, '어머니의 초상화' ⓒ노튼 사이먼 미술관

 

 

-고흐에 대한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넘어 한 인간의 공감능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인간과 그림을 절절하게 풀어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고흐가 산 37년 역사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외롭게 살다가 죽었지만 그를 사랑하는 별 같이 많은 친구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를 통해 고흐가 공감의 숨결을 지하에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브라카다브라’라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올리시고 주변과 소통하고 계신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브라카다브라’는 히브리어로 ‘네가 가진 불꽃을 세상 끝까지 퍼트리라’는 뜻입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공간으로 블로그를 이용합니다. 현재 공개된 글이 550개, 열 권 이상의 책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속엔 제가 말하고 싶은 예술, 문학, 여행 등 인문적 이야기와 사회 참여적 글이 망라돼 있습니다.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우선 제 전공인 인권과 관련된 기념비적인 글을 써야겠지요. 또 글이 모아지는 대로 새로운 교양서도 계속 낼 생각입니다. 강의실에서는 현장의 소리를 내겠습니다. 정치, 사회 분야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지는 않겠지만 전문가로서 좋은 정치,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언제든지 동참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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