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집의 도움을 받을 형편이 아니었다.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중국어 과외, 번역이나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때가 아니어서 굉장히 신경 쓰이고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일을 맡아놓고는 너무 힘들어 후회했던 적도 많았다. 당시 집에 컴퓨터도 없었던지라 학교에서 번역작업을 할 때가 많았고, 통역을 할 때면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위 동료 친구들은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는 봉급을 받는 날인데 동료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와 한턱 내라고 했다. 그런 말들을 농담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했다.

아르바이트 봉급을 받았으니 한턱 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던 사람도 있었고, 또 가깝게 지내던 친구도 있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지도 않던 사람이 나한테 한턱 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욱 몰랐다.

‘강도의 심보’라는 느낌이 들어 이해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한번은 통역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는데 또 한턱 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 많이 지쳤기 때문에 친한 친구한테 “한국 사람을 이해 못하겠다. 그리고 넌 옆에서 내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봤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한턱 내라는 소리가 나오냐”고 따졌다.

물론 중국 사람도 한턱 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다거나 좋은 일이 생겼다거나 상금을 탔다거나 할 때 한턱 내라는 얘기를 하지, 월급이나 아르바이트 봉급을 받았다고 한턱 내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하면 당황했을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그때는 그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들의 나눔의 정과 나눔의 기쁨을 아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힘들게 일해 얻은 대가나 성과에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줄 수는 있지만 쉽게 “한턱 쏴” 하는 것은 지금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눔은 성취자가 누릴 기쁨이지 옆에 있는 사람이 강요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줄 수 있는 삶은 정말로 나눔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많이 성취해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삶이길 기원해본다.

서강대 대학원 박사과정(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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