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프랑스 문화기행 책 펴낸
한승호 넥스트벤처파트너즈 대표
직장인으로서 ‘원하는 삶’ 살았지만
은퇴 이후 ‘삶의 목표’ 없어 막막
프로방스 화가들의 삶 엿보며
열정·사랑이라는 지혜 깨달아
“사람농사 짓는 일 관심…
시민단체 활동가 지원 할 것“

⌜프로방스의 바람과 빛의 화가들을 찾아서⌟의 저자 한승호 넥스트벤처파트너즈 대표가 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여성신문사 앞에서 저서를 들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프로방스의 바람과 빛의 화가들을 찾아서』의 저자 한승호 넥스트벤처파트너즈 대표가 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여성신문사 앞에서 저서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어디로 가야하나?” 평생 앞만 보고 쉴틈 없이 달려온 사람이라면 은퇴라는 문턱에서 앞길이 막막한 순간을 경험한다. 한승호(65) 넥스트벤처파트너즈 대표도 환갑을 맞으며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고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6번의 전직을 하며 직장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 원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강릉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전력기술(주) 기술역, (주)유피테크 대표이사, 대한제당 중앙연구소 소장, 강원전략산업기획단장 등을 지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했다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은퇴를 경험하고 인생 2막을 앞둔 한 대표는 “살아가야 할 날은 많은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인생 후반전의 목표를 찾기 위해, 인생의 ‘숙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여행’이었다. 돌아보니 일하느라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보낸 적이 없었다. 평소 취미처럼 미술사 공부를 해온 그는 유명 화가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는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지방으로 떠났다.

최근 한 대표는 남프랑스 여행 기록을 엮어 책 『프로방스의 바람과 빛의 화가들을 찾아서』로 펴냈다. 그의 손을 거쳐 출간됐지만, 가족이 함께 만든 책이기도 하다. 글은 한 대표가, 사진과 여행 일정은 딸 한솔씨가, 렌트카 예약은 아들 한정연씨가 맡았다. 가장 중요한 여행의 동반자는 아내 김양희씨였다. 책에는 11월 프랑스 남부의 기운이 담뿍 담겼다. 중세도시 아비뇽으로 시작해 고흐와 고갱이 함께 활동한 아를, 고흐가 요양하던 생레미드프로방스, 세잔이 평생을 보낸 엑상프로방스, 피카소가 노년에 머물렀던 앙티브, 마티스의 걸작이 남아있는 방스와 샤갈미술관으로 유명한 니스까지. 한 대표는 차로 프랑스 평원을 가로질러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하지만 한 대표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발자취보다 그들의 삶에 더 마음이 갔다. 특히 작품 뒤에 숨어있는 화가들의 노년의 모습에 주목했다.

“화려한 색채로 ‘야수파’로 불리는 마티스는 암 수술 후 요양차 방스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야간간호사 여성 모니크 부르주아를 만나요. 그는 마티스의 작품 모델로 서기도 했지요. 이후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3년 뒤 다시 마티스에서 재회해요. 그때 모니크는 자크마리 수녀가 돼 있었죠. 수녀의 요청으로 마티스는 77세의 나이에 예배당 건설에 4년을 매달려요. 두 사람이 나이와 신분 차이에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했다는 생각을 해요. 인상파 르누아르도 여인의 누드화를 많이 그려 바람둥이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화려한 그림 이면에는 화목한 가정이 있었어요. 르누아르는 절친했던 세잔이 죽자, 그의 아들도 거둬 장가까지 보낸 인물이죠.”

그는 권위적인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청년 시절을 보낸 화가 세잔의 모습에서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삶도 되돌아봤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일까, 세잔의 아버지처럼 권위적이진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직업이나 부를 대물림 하려는 의도로 은연 중에 아이들의 미래를 요구하거나 기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지요.”

한 대표는 프로방스에서 만난 화가들에게서 ‘사랑’이라는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했다. 그것을 통해 인생 후반전 목표도 조금씩 확실해지고 있다.

“화가들 가운데 노년을 허송세월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하면 편하게 놀고 여행이나 하는 걸 생각하잖아요. 아니면 복지관에 모여 시간을 떼우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화가들은 죽는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들이 끝까지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인생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를 위한 사랑을 넘어 남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숭고한 삶이요.”

한 대표는 삶을 농사에 빗대 인생 후반기에는 ‘사람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고 박영숙 선생님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사를 지내며 측면에서 시민사회를 지원해왔다. 앞으로는 더 본격적으로 시민단체 활동가 지원에 나서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민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일이 결국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고흐는 척박한 땅을 일궈 죽기 전까지는 포도 열매를 수확하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야 진가가 드러난 화가였어요. 피카소는 포도를 수확해서 와인까지 만들어 돈을 벌었고요. 많은 화가들이 자기가 받은 숙제를 다 하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포도를 잘 키워 좋은 와인을 만든 삶을 살았어요. 저도 그런 농부가 되고 싶어요. 열정과 이상을 품고 활동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그들이 스스로 커리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제가 씨를 뿌리면 누군가 옆에 비료를 주고, 또 다른 이는 가꾸지 않을까요. 백년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