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렌즈로 본 유럽 복지] ② 네덜란드 보건당국 GGD
인력 절반 이상 의료진
불법이민자·성매매 종사자·
난민 ‘건강권’도 챙겨
고립은 질환 악화의 요인
‘외로움’도 관리한다

‘자전거 천국’ 암스테르담 시내 모습. GGD암스테르담은 ‘헬스 웨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체중 관리를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초등학생이 등학교 시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권장한다.
‘자전거 천국’ 암스테르담 시내 모습. GGD암스테르담은 ‘헬스 웨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체중 관리를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초등학생이 등학교 시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권장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야 한다.”

네덜란드 법에 명시된 ‘건강권’ 조항의 내용이다. 취약계층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건강 보호를 받아야 하고, 단순히 질병 치료만이 아니라 건강증진과 재활 등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GGD는 네덜란드 국민의 건강형평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네덜란드 모든 지역에 공공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GGD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네덜란드 국민은 누구라도 생애 한 번 이상 GGD를 방문한다. 임신을 한 여성은 산부인과 병원이 아닌 GGD를 찾아 임신부 관리를 받고,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정기적으로 GGD 어린이 건강 센터를 찾아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확인한다. 열대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은 여행 클리닉에서 예방 접종을 받으며, 바퀴벌레나 쥐 때문에 골치 아픈 시민이라면 GGD에 해충 방제 서비스를 요청해 문제를 해결한다. 성병에 걸렸거나 알콜중독·마약중독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도 GGD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도 상담과 치료를 이곳에서 지원한다. 예방프로그램 제공, 의료환경 개선, 아동보건의료 제공, 전염성질환 관리가 모두 GGD에서 이뤄진다. 특히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보건의료서비스를 GGD가 책임진다.

GGD는 한국의 보건의료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지원 대상과 영역이 방대하고 더 적극적으로 지원 대상을 발굴한다. 특히 전체 인력 중 의료진이 절반 이상으로 전문성을 갖췄다. GGD 암스테르담에 근무하는 약 1100명의 직원 가운데 의사와 간호사는 6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의사가 100여명으로 감염, 법의학, 정신질환 등을 담당한다. 500여명의 간호사는 의사들과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다.

이곳 의사는 모두 GGD 소속 공무원이다. 반면 한국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의료원 의사 대부분은 병역의무를 대신해 3년만 근무하는 공중보건의다. 하지만 공중보건의도 최근 7년 사이 1500명 이상 줄어들면서 공공의료 공백 우려도 있다(보건복지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GGD는 최근 감염성 질환보다는 암이나 당뇨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나 식습관 변화로 인해 증가하는 질환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정신 질환도 GGD가 주목하는 분야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는 ‘고독’과 사회적 고립에 따른 우울증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지난해 GGD 암스테르담이 고독 관련 여론조사를 펼친 결과, 암스테르담 시민 70만명 중 약 30만명이 ‘고독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답했다. 8만 명은 ‘심각하게 외롭다’고 응답했고, 22만 명은 ‘보통 정도로 외롭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늘어가는 고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련의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암스테르담 시는 고독 문제 예산으로 올해부터 매년 100만 유로(한화 약 12억5000만원)를 배정하기로 했다.

사회적 관계망이 취약하거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노인 가구나 1인 가구는 고독으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도 발굴이 쉽지 않다. 이때문에 고독사 같은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거나 고립으로 인해 질환이 악화될 가능성도 높다. GGD는 이러한 취약계층을 발굴하기 위해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르나우드 페르회프 GGD 암스테르담 역학 담당 총괄·건강 증진 관리 혁신 담당  ©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자단
아르나우드 페르회프 GGD 암스테르담 역학 담당 총괄·건강 증진 관리 혁신 담당 ©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자단

 

(이하 총괄)은 “네덜란드에는 노년층 뿐만 아니라 1인 가구도 많은데, 고독감으로 인한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아 시에서도 주요 과제로 삼고 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이어 “암스테르담시 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의 도움도 필요하다”며 “함께 저녁 먹기, 함께 외부활동 하기, 자금이나 공간 대여 지원 등을 통해 민·관이 함께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난민과 미등록 이민자도 건강권을 보장받는다.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센터와 GGD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암스테르담 시민과 똑같다. GGD 암스테르담은 난민의 정신질환이나 감염에 역점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미등록 이민자 등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아 일반 의료보험 혜택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시 보조로 이들을 위한 주치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성매매를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에선 성매매 업소 종사자 건강도 GGD가 관리한다.

네덜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일부 허용된 지역에서만 성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성매매를 합법화한 이후 현재 네덜란드에서 약 7000여명 이상의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간주해 ‘성노동자’(sexworker)라고 일컫고, 노동보호법을 적용한다. 종사자 중 대다수가 동유럽 출신으로 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성노동자’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회프 박사는 “성매매 집결지 인근에 클리닉이 있어 성병 등 이들의 건강을 관리한다”며 “겉으로 보기엔 잘 관리되고 있지만 인신매매로 인한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사실은 일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건강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등록돼 있는 ‘성노동자’”라면서도 “집결지가 아닌 일반 주택에서 성매매를 하는 미등록 종사자들은 이웃 신고로 적발된다”고 말했다.

‘평등한 건강권’은 최근 국내에서는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기존 헌법에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지만 아직 건강권 보장 범위가 협소하고 애매하다. 한국은 건강불평등 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이 2013년 발표한 전 세계 176개국의 ‘건강불평등 격차’에서 우리나라는 33위를 차지했다. 건강불평등 격차는 보건서비스에 접근이 쉬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나타내는 지수로, 격차가 클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보건 교육, 예방, 치료 등이 보장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33위를 차지해 전체 순위에선 비교적 상위권에 자리 잡았지만 고소득 국가 중에서는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네덜란드는 건강불평등 격차를 줄여 모든 국민이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의료복지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GGD는 취약계층의 건강을 ‘돌보는’ 최일선 기관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인프라는 깔려 있지만, 부족한 인력 수급과 열악한 의료 장비, 장기적 비전 없는 공공보건의료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네덜란드 GGD가 건강불평등을 해소하는 정답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성별이나 빈부에 따른 차별 없이 ‘건강할 권리’를 누리도록 국가와 지방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되새길만 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