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이라는 애매한 말이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을
희석하거나 시청하는 것
자체가 범죄임을 은폐해왔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쌈디는 등장한 첫 회에서 금욕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야동 시청 경험’을 화제로 삼는다. 그리고 남성패널들에게 “다 보지 않느냐”라고 동의를 구한다. ‘밥블레스유’에는 직장 동료에게 컴퓨터 수리를 맡겼는데 ‘야동’ 다운로드 내력이 남아있는 것을 깜빡해서 창피하다는 사연이 도착했다. ‘아는 형님’에서 아이콘 멤버들은 빅뱅의 승리가 ‘야동’이 잔뜩 담긴 외장하드를 숙소에 두고 갔다고 폭로했다.

언젠가부터 미디어에서 ‘야동’은 우리 사회의 성엄숙주의를 타파하는 귀여운 도발(짜증), 남자라면 당연히 보는 문화(짜증2), 그 사람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소재(짜증3)로 스스럼 없이 등장한다. ‘19금’ 캐릭터를 미는 몇몇 여성 연예인을 제외하면 그런 코드를 이용하거나 소비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만이 안전하고 당연하게 ‘야동’을 향유할 수 있다. ‘야동’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의 남성성을 증명하고 점검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문제는 무엇이 ‘야한 동영상’인가이다. ‘야하다’라는 말은 무척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 ‘야동’은 보통 셋 중 하나이다. 한국의 성인물(직접적인 성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 불법적인 경로로 유통되는 외국의 포르노, 여성의 신체나 성관계를 불법촬영하고 유포한 영상이다. ‘국산 야동’으로 불리는 영상은 거의 다 세 번째에 해당한다. 즉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의 증거 자료라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언론이 사용하는 ‘비동의 유포 음란물’이라는 단어도 옳지 않다. 한때 이 불법촬영물들은 ‘리벤지 포르노’로 불렸다. 그러나 복수한다는 뜻의 ‘리벤지’가 알맞지 않고(피해자가 복수 당할 만한 일을 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그 영상은 포르노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디지털 성폭력’으로 바뀌었다. 영상은 폭력이고, 보는 행위는 영상을 유포한 범죄자의 의도에 충실히 응답하는 또 다른 범죄이다. 그것을 야하다고 여긴다면 섹스와 폭력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법촬영물의 공유와 소비는 호모 소셜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SNS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남자는 ‘사랑’이 느껴져서 불법촬영물만 본다는 말을 하고, 유머자료 페이지에는 특정 불법촬영물을 암시하는 내용이 올라온다. 해당 게시물에는 남자라면 모를 수 없다고 낄낄거리며 친구를 태그하는 댓글이 가득하다. 불법촬영물이 유출된 여성이 극심한 고통으로 자살하면 ‘유작’이라고 부르며 소비한다. 중식이 밴드의 ‘야동을 보다가’는 대놓고 전 여자친구의 유포된 불법촬영물을 보는 감상을 노래하지만, 비판보다는 열띤 지지와 옹호를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는 아직도 한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무기로 악용된다. 최근 불법촬영물 유포 가해자가 최근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지난 8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현장 모습.
디지털 성범죄는 아직도 한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무기로 악용된다. 최근 불법촬영물 유포 가해자가 최근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지난 8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현장 모습.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자로 알려진 양진호는 직원 폭행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수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양진호가 ‘유작 마케팅’을 벌이거나 헤비 업로더 등과 적극적으로 유착한 정황이 드러나고, 웹하드 업체-필터링 업체 ‘뮤레카’-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유착한 ‘웹하드 카르텔’ 의혹이 제기되었다. 불법촬영물을 ‘야동’이라고 부르며 즐기는 문화는 조직적인 비호와 유착 아래 굳건했던 것이다.

라디오에서 양진호를 우리 사회의 ‘괴물’로 호명하는 남성 패널의 말을 들었다. 누군가를 괴물로 타자화하고 선을 긋기는 쉽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100원, 200원씩 하는 불법촬영물을 팔아 1000억원의 부를 쌓았다는 사실이다. 이 불법촬영물 소비 문화에 가담하고, 방조하고, 조장한 수많은 티끌들은 무죄인가? 불법촬영물이 유출되더라도 아무도 보거나 재유포하지 않았다면 디지털 성폭력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불법촬영물 유포에 적극 가담하여 수익을 얻은 직원들은 가련한 ‘을’이기만 할까?

너무나 오랫동안, ‘야동’이라는 애매한 말이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을 희석하거나 시청하는 것 자체가 범죄임을 은폐해왔다. 더 이상 미디어에서 ‘야동’을 언급함으로써 하찮은 해방감을 느끼거나 남성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장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쿨’한 척하거나 ‘인간미’를 어필하는 꼴을 웃어넘길 수 없다. 디지털 성폭력은 디지털 성폭력이라고 적확하게 표현하고, 다운 받고 보는 행위를 웃어넘기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 때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