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어린이병원 응급실.

응급실이란 단어만으로도 사람을 잔뜩 긴장시키는 이곳에 필리핀 이주여성노동자 벨마(28)씨의 아기가 누워있다. 작은 바구니 안에 이불이 덮여 있어 처음엔 아이가 없어진 줄 알고 한참 찾을 정도로 아기는 매우 작았다. 제대로 컸다면 이제 엄마 뱃속에서 8개월을 맞이했을 아기의 현재 몸무게는 1.76kg, 키는 42cm. 이불 밖으로 살짝 비쳐진 가느다란 손이 너무 앙상하다. 담당 간호사가 살포시 안으니 아이 몸은 어른 팔뚝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 먹은 약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계속 잠만 잔다고 얘기하는 조은주 담당 간호사는 “그래도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태입니다. 지난해 11월 18일 태어났을 때는 900g으로 인큐베이터에서 50일간 견디고 이제 겨우 인공호흡기를 떼냈으니까요. 처음엔 이 아기가 살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라며 많이 건강해진 아기가 대견스러운 듯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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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마씨의 아기는 현재 ‘미숙아 망막증’이 진행되고 있어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사진·민원기 기자>

옆에서 간호해 주는 사람의 마음도 이럴진대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아기의 부모인 벨마씨 부부는 둘 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남편이 먼저 99년에 입국하고 2001년 부인도 함께 입국했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는 ‘불법 체류 노동자’.

교육이나 의료, 인권마저 철저히 무시당했지만 열심히 벌어 고향에서 살 날만 손꼽으며 두 부부는 자수공장에서 일하던 터다. 그러던 두 부부에게 ‘신의 선물’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벨마씨가 임신 6개월일 때 심각한 임신성 고혈압으로 수술을 받은 것이다. 수술 후 2개월이 지난 지금 아기의 건강도 호전되고 벨마씨 역시 지친 몸을 많이 수습했지만 산너머 산이라고 당장 두 부부 앞에 닥친 것은 밀린 입원비다.

벨마씨 부부와 같이 둘 다 이주노동자인 경우 의료보험 보장혜택은 전혀 없다. 물론 자녀 역시 불법 체류자에 포함되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벨마씨 아기의 경우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와 라파엘 클리닉, 함춘 후원회, 필리핀 공동체 등 여러 곳에서 후원을 하는 관계로 그나마 일정 부분 병원비를 할인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밀린 입원비가 2천만원 정도다. 그러니 파악조차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건강권은 전무하다 할 수 있다. 라파엘 클리닉의 권현주 간사는 “벨마씨 아기처럼 중증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작년 한해만도 4명 봤다”며 “60, 70년대 독일로 일하러 간 우리 간호사들에게 최소한 의료보장과 사회보장 혜택은 있었는데 아무 죄 없는 아이들에게 의료혜택조차 없는 것은 비참한 현실”이라며 정부의 적극 지원을 요구했다.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의 김미선 사무국장은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가 의료 부분

에 있어서는 많이 알려진 단체임에도 28만명으로 예상하는 이주노동자 중 단체에 소속돼 의료혜택을 받는 노동자들은 불과 1만2000명 정도”라며 “아이들의 건강에 관한 실태는 파악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의료공제회는 올해 건강사업의 일환으로 어린이 건강검진 등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건강권 보장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동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 벨마씨 아기의 병원비가 많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후원계좌로 성금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하실 때 이름 옆에 velma라고 기록해 주세요. 국민은행 031-21-0674-799 김 전, 우리은행 058-146810-02-201 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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