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문 홍보대행사의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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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영화 기획사에 첫발을 들여놓았어요. 그 때는 영화 관련 분야에 여성이 적었기 때문에 한때 충무로의 홍일점으로 불리기도 했죠.”

영화 전문 홍보대행사 ‘올 댓 시네마’의 채윤희 사장은 18년 전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조언을 구할 사람도 거의 없었던 그 때 채 사장은 10년 가까이 출판·연극 기획 부분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기획·홍보 분야를 개척하는 일에 거침없이 내달렸다.

“1993년 삼호필름을 그만둔 상황에서 삼성드림박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안전하게 기업에 소속돼 일하는 것도 좋지만 크기 위해서는 독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음해 올 댓 시네마를 차렸어요.”

마흔에 영화 전문 홍보대행사의 사장이 된 것이다. 당시에는 영화 전문 홍보대행사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기에 올 댓 시네마는 영화 전문 홍보대행사 분야를 개척한 첫 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전 직원이 영화 쪽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에 ‘충무로의 사관학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KM컬쳐 심영 이사, 강재규 필름 조옥경 실장, 쇼박스 박준경 대리와 영화 프로듀서로의 진출을 코앞에 둔 올 댓 시네마의 초대 실장 노은희씨 등이 대표주자다.

올 댓 시네마의 특징은 채 사장을 비롯한 7명의 전 직원이 모두 여자라는 점.

알고 보니 처음 설립된 1994년부터 죽 이어진 전통이었다. “9년 동안 남자 직원은 2명에 불과했어요. 우선은 여성들이 지원을 많이 해요. 아무래도 남성들은 영화 현장에서 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의 특성이 영화에 적합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에요. 특히 대인관계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장점을 발휘하죠.”

영화 흥행의 성공은 마케팅이 좌우

“영화 마케팅은 영화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포장하는 작업이에요. 마케팅은 때로 흥행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만큼 중요해요.”

포장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보도자료 작성·배포에서 카피 제작, 광고 디자인, 시사회 진행 등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국산영화일수록 그 과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외화는 완성된 영화를 홍보하면 되지만 국산 영화는 달라요. 시나리오가 나오는 순간부터 영화 제작이 끝난 후까지 그 영화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보통 외화보다 시간·돈이 세배 이상 들죠.”

올 댓 시네마가 90% 이상을 외화로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라도 될 영화에는 과감히 투자한다. 올 댓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쉬리>가 대박을 터트린 데서도 엿보이는 부분이다.

올 댓 시네마처럼 영화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15개 가량. 채 사장은 “영화 제작사와는 달리 수익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서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월급 한번 밀리지 않고 줄 수 있었던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며 수익을 밝히기를 꺼렸다. 그러나 남들이 규모를 줄이기에 바빴던 IMF 때 오히려 직원을 더 채용할 정도로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채 사장에게 가장 짜릿함을 안겨준 영화는 무엇일까. 그는 거리낌없이 프랑스 영화인 <네프므와>를 들었다. “<네프므와>를 개봉한 뒤 일주일만에 비슷한 내용의 미국 영화 나인먼스가 개봉됐어요. 밀고 당기는 마케팅 전략이 시작됐죠. <네프므와>가 1억, <나인먼스>는 대략 200억 가량의 비용을 썼는데 서울 기준 관객 수는 나인먼스가 2만 명 정도 많은데 그쳤어요.” 적은 돈으로 비슷한 성공을 올렸다면 대기업과의 마케팅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나 진배없다.

영화 마케팅에는 외부 환경이 작용하기 마련인데 채 사장의 경우 최근에 진행됐던 촛불시위로 인한 간접피해를 보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 계약한 <007 어나더데이>가 그 주인공. 채 사장은 “계약을 체결한 당시에는 ‘007’ 40주년 기념작이고 해서 성공을 기대했지만 촛불시위 후 반미 감정이 타오르면서 된서리를 맞았죠. 사회적인 이슈로 스캔들에 오르는 영화는 성공을 보장받기 어려운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여성 영화인 위한

24시간 어린이집 만들고파

채 사장은 여성영화인 모임에서 출범 후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영화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줄잡아 500∼600명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350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며 “이 모임은 여성 영화인들의 네트워크 구성과 함께 영화 쪽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직업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육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영화를 비롯한 문화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결집해 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이 그의 희망사항이다.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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