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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적인 시선으로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는 여성문화예술기획(이하 여문기획)이 계미년 새해를 맞아 어떤 반란을 꿈꾸고 있을지 궁금하다. 여성주의 문화예술분야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혜경(50) 대표를 만났다.

- 2002년 여성문화에 대해 간략한 평가를 내린다면.

영화부문에서 여성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다. 여성감독뿐 아니라 영화도 좋은 시각의 작품들이 늘었는데 변영주 감독의 〈밀애〉는 불륜을 표방했지만 내용적으로 여성적인 접근이 좋았다. 하지만 소위 ‘작가영화’ 혹은 ‘예술영화’로 분류돼 존경받고 있는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같은 남성감독들 작품에 그려진 여성 이미지가 상업영화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왜곡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휴머니즘’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한국 영화가 아직도 후진성에 머무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여성주의적 감각에 있어 일종의 ‘불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제 남성감독들도 여성관객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 여성영화제의 성과라고 한다면.

아시아 연대를 들 수 있다. 대만에서의 여성영화제와 제1회 오사카 여성영화제(11월 29일∼12월 1일)에 참여하면서 페미니즘에 있어서는 민족과 국가라는 경계보다 여성연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공감했다. 국가나 민족의 이익이 아닌 마이너리티의 연대가 중요하다. 아시아 여성영화제는 문화적 연대이며 넓게 봐서 정치적 공동체 구성이나 연대까지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 영화 외 미술이나 다른 영역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성미술 역시 ‘동아시아 여성과 역사’라는 주제로 진행돼 아시아 속에서의 한국 미술의 의미와 아시아적 여성정체성과 삶에 대한 고찰이 돋보였다. 이는 동아시아 작가가 모여 여성의 창조성을 고양하고 미학적 실천을 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작년에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여성문화는 ‘여성사전시관’이다. 21세기는 박물관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런 때 여성의 역사를 진지하면서도 쉽게 접근했다는 점이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획을 긋는다.

-여성주의적 문화가 대중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지.

철학적 인식의 틀이 바뀐 21세기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활동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론의 새로움 때문에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성문화는 빨리 적응했고 역동적이다. 이런 여성문화가 허위의식을 벗고 신체적이며 유동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홍석천이라는 연예인이 커밍아웃을 하고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점은 성적 정체성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모습이 훔쳐보기 등의 다른 작용도 있겠지만 기존 여성문화가 제기했던 내용의 영향으로 대중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지난해 주목할 것은 여문기획에서 끊임없이 제기한 놀이정신이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파고들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사회적 흐름과 맞물리기도 했지만 월드컵이나 선거를 통해 나타난 축제 분위기에 여성들이 앞장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여성운동도 이슈 파이팅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로 인간의 긍정적인 내용들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관한 성담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성담론을 얘기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초창기 김보은씨나 권인숙씨 경우 성폭력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피해자적 입장, 보수적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성폭력에 관해 진보적 입장에서 문화이론적, 문화운동적으로 접근한 것이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몸과 성에 대해 과감히 드러냈던 활동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지난해부터 ‘여신’을 주제로 기행도 하고 있던데...

90년대 ‘마녀’라는 개념이 여성의 끼와 능력, 언어를 거부하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항변이었다면 ‘여신’은 기존 문화의 안티가 아닌 긍정적으로 종합하는 개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형상화된 여신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여신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온전하게 하려는 내용, 그래서 여신은 개별적으로 완성되지 않고 사회적 관계, 유기적 관계 속에서 진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역시 여신기행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동서양 교류에 실크로드가 필요했듯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 예정이다.

- 올해는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가.

초창기 여문기획은 여성적 관점에서 문화를 생산하는 ‘여성문화 생산가 교육하기’에 앞장섰다. 이젠 전문가와 일반인의 이분법적 관계가 해체되고, 일반인들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때다. 머리가 아닌 오감으로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중요하다. 또 여전히 중요한 것은 국제 연대, 특히 아시아 연대다.

아시아 연대를 강조한 것은 서구중심의 문화와 식민지문화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의 사업으로 ‘생명음악회’와 ‘아시아 여성영화제’가 있다. 이제 지역문화는 물리적이나 영토적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과 대만, 한국의 여성들이 인터넷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데, 오랜 역사동안 일정한 공간 안에서 공유해야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20세기적 발상은 버려야 한다.

동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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