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서 고생한 적이 있다.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거나 지갑을 두고 나왔거나, 혹은 지갑에 돈이 있는 줄 알았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다. 그 때의 고생과 창피는 훗날 추억으로 남기도 하고 지겨운 경험이나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간혹 치 떨리고 살 떨리는 일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게다.

세살 경에 서울로 올라왔다. 대전 시내에서 살다가 가족이 상경해 주욱 서울에서 살았으니 서울내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언제나 사설이 길다. 부모님 고향이 함경도 함흥이다. 따지고 보면 이북자식이니 이북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내 나이에 고향이 함경도라고 하기엔 가당찮고, 대전이라고 하기에도 어줍잖다.

그러니 항상 사설이 길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고향 삼을 양으로 용인이라고 한다. 어라~, 그랬더니 더 복잡하다. 언제부터 살았느냐며 역사를 들추니 대답이 옹색해 이도 마땅찮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사설이 길까. 바로 고향의 향취를 수다하고 싶어서다. 고향도 모르는 사람이 떠들려는 게 우습지요?

서울은 알다시피 익명성의 도시다.

코 앞의 동네라면 모를까, 하루종일 어디를 돌아다녀도 아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울 한복판에서 어쩌다 여러가지 일시적인 사연으로 돈이 없으면 금방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것이 고약한 상인 앞이면 파출소로 끌려가기 십상이다. 동네 슈퍼도 특별한 친분이 없으면 그 옛날처럼 외상지고 월말에 갚던지 세밑에 갚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용인은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백발백중 아는 사람을 만난다. 밥집을 가든 동사무소를 가든, 버스정류장, 병원, 하다못해 양품점엘 가도 인사할 일이 생긴다. 그러니 멍청하게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고 안달복달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밥집이나 약국이나 어디든 불안초조에 떨지 않고도 볼일을 보며 다닐 수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던가?

용인에서는 <용인 따라 친구도 간다>로 바꿔야 할 거다. 주인장을 직접 몰라도 한 사람만 건너면 사돈의 팔촌으로 뻗어 도움을 청할 수 있으니 염치만 좀 넘긴다면 수월하게 곤욕을 피할 수 있다.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괜히 오금이 저리는 파출소나 동사무소 같은 관공서에서도 도움을 청할 수 있으니 시골은 시골이다. 하루종일 대문을 열어 놓고 사는 시골의 정서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용인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서울내기들은 이런 경험이 없으니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을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곧 마을 일이라는 정서를 어찌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겠는가. 나도 슬슬 용인사람이 다된 기분이다. 그 넉넉한 품을 따라가기에 아직은 가랑이가 찢어지겠지만 말이다. 어? 뭐라구요? 다리가 숏다리라서 평생 못 따라 간다구요? 오메메….

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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