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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률의 그림은 극도로 고요하다. 시간도 정지된 듯하다. 아니 그보다는 현실의 시공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더 옳겠다. 보는 이마저 숨죽이게 하고 삼매경에 빠진 눈동자가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구하게 만든다.

고요한 눈을 지닌 화가 박항률 개인전(부제 ‘Meditation-Searching for Inner Peace’)이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인데코’에서 열렸다. 그의 그림에서는 평면의 배경에 하나의 인물과 나비, 새, 잠자리, 말 등이 인물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남자는 삭발한 스님으로 성을 구분하기 힘든 모습이고 여자는 단발머리이거나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모습이다.

인물들은 한결같이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더러 초점을 고정시킨 채 현세보다는 내세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듯, 생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명상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피안의 세계를 밝혀주는 빛처럼 등불도 등장한다. 이러한 환상적인 분위기는 그가 쓰는 색감에서 한껏 고조된다. 다가오는 연말, 마음은 더욱 분주하기만 한데,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슬며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지금 네가 할 것은 바쁜 걸음이 아니라 그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나’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일깨우는 듯 하다.

김지영 객원기자 comaha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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