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언/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10월 23일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호적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는 의미있는 토론회였음이 분명하다. 적어도 호주제를 존치시키냐 폐지시키느냐는 문제로 쓸데없는 시간낭비 하지 않고 호주제 폐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인정한 상태에서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을 논의했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큰 기대를 가졌던만큼 아쉬움이 컸다. 아니 아쉬움이 아니라 잘못을 지적해야겠다. 그동안 필자의 호주제 칼럼을 읽은 여성신문 독자들은 아실 것이다. 필자는 호주제 폐지 후 대안으로 가족별편제(가족부편제, 부부공동대표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누누히 강조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제 발제를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여성 인권위원회 이정희 변호사는 ‘가족별 호적’을 기본으로 한 민법 개정안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부부와 미혼자녀로 호적이 편제된다는 점(3세대 동적 금지), 기준인은 부부가 협의해서 정하며 합의가 안되면 추첨을 통해 결정한다는 것 등-부부가 공동으로 대표를 하는거나 추첨을 해서 정하는 거나 솔직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호주제 폐지는 단순히 남녀의 자리싸움이 아니란 말이다!!-필자가 예전 칼럼에서도 언급한 가족별 편제에 대한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이정희 변호사도 지금은 가족별편제에 대해 얘기하지만 장기적으로는 1인이 1호적을 가지는 방향(개인별 신분등기)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고, 또한 가족별 호적은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되지 않는 가정을 비정상으로 치부해 당사자가 밝히길 원치 않는 가족사가 밝혀지는 것이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은 가족별 편제가 현재 우리 현실에 맞는,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것 참 이상하지 않은가. 최선의 대안을 알고 있으면서 반쪽짜리, 또다른 차별을 만들어내는 제도(발제자도 인정했다)를 권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면 곤란하다. 적어도 토론회(이 토론회가 끝난 후 뉴스에서는 가족별편제가 대안이라는 점만을 보도했다)라면 모든 대안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제에서부터 가족별 편제가 대안이라고,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결론짓는 이런 방식은 합리적이지 않다. 적어도 가족별 편제가 언급된 만큼 일인일적제(개인별 신분등기)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어야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자로 참여한 서울대 윤진수 교수의 가족별 편제 비판과 조대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개인별 호적제도(일인일적, 개인별신분등기) 제시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호적업무를 직접 경험한 조대현 부장판사의 발언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나온 발언이라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인일적만이 국가를 위한 신분등기의 역할(성명과 주민번호로 신분기록을 찾아낼 수 있고 본적이 없으니 전적의 문제가 없고 자녀 신분기록을 어디에 넣을 것인가에 관한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과 국민을 위한 인권보장(배우자·부모 등의 신분변동은 기록되지 않아 이것이 한꺼번에 공시되는 가족별 편제에 비해 프라이버시를 더 보호할 수 있다)이라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도란 것을 증명했다.

이번 칼럼을 읽은 독자들은 필자의 글이 너무 편향적이지 않냐고 항의할지도 모른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다른 논조의 평을 하니 말이다. 그렇다. 필자는 편향적이다. 가족별 편제를 반대하고 일인일적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편향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 한가지만은 독자들에게 확언할 수 있다. 필자의 편향됨이 국민정서, 현실 언급하며 가족별 편제를 주장하는 분들보다 좀더 근본적이며 진실한 시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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