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가정 내 아내강간 발생률 60%

폭력가정의 피해자가 배우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62.6%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지난 3월 28일부터 6월 15일까지 전국 가정폭력 피해자 2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176명이 배우자로부터 강간을 당해왔다고 답했으며 84명(29.9%)은 구타나 욕설, 오랄섹스를 강요하는 등의 행위를 동반한 강간을 겪었고 팔다리를 묶거나 담배불로 지지거나 이물질을 집어넣는 등 가학적 강간을 경험한 이도 51명(18.1%)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중 8명은 남편이 딸에게도 성폭력을 범했다고 답했다.

여성의전화가 2일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주최한 ‘폭력가정내 성학대 실태보고 및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박정란 인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구결과 가정폭력에는 많은 경우 성폭력이 수반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고 보고했다.

박 교수는 또 “연구자들은 조사과정에서 많은 여성들로부터 다른 어떤 폭력보다도 성적 학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결과를 얻었다”면서 “이같은 결과는 ‘마치 내가 개처럼 느껴졌다’라거나 ‘더 이상 맞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었다’ 등의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희진 경희대 강사는 “폭력가정에서 아내에 대한 성폭력은 남편에게는 ‘부부싸움 후 화해’를 의미하지만 아내에겐 ‘구타 후 강간’”이라며 “자의적인 가해남편의 해석은 부부간 성역할로 정당화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가해자의 행위 그 자체보다 가해자의 의도, 피해자와의 관계, 피해자의 신분이 범죄구성요건에 더 우선하는 문화적 태도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회구성원 모두가 ‘아내 성폭력을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혼인관계 속의 ‘강간’ 혹은 ‘배우자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다루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부부사이의 성폭력에 대해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현상이 만연돼 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혼인관계 안에서 성폭력 가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토론회에서는 배우자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와 법원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오갔다. ‘폭력가정내 배우자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1960년대 스웨덴을 필두로 강간에 있어 배우자 면책조항은 점차 폐지돼 가는 추세다. 1980년대 영·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돼 미국은 대부분 주가 면책의 완전 또는 조건부 폐기에 이르고 있으며 독일도 1997년 법개정으로 아내강간은 아무 조건이나 제한없이 범죄성립과 소추가 가능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법 해석상으로는 부부 사이의 강간을 부정할만한 단서를 찾기 힘들다. 형법 상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를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배우자가 제외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원은 부부간 강간을 강간죄로 인정하지 않고 강요죄나 폭행죄로 취급하는 실정이다.

부부관계의 특수성이나 상대적 경미성, 증거확보의 어려움 등 통설과 ‘설령 남편이 폭력으로서 강제로 처를 간음하였다 해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1970년 판례에 따라 우리 법원은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하지 않은 채 통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란 교수는 “부부간 성폭력에 대해 사회적 개입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사회의 많은 가족문제가 아직도 가족 프라이버시 논리로 공권력의 개입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에 대한 처리가 적극적인 법률해석보다는 통설과 판례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부부가 상호 성관계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진다는 결혼의 합의가 남편이 자력구제로 아내를 강간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제대로 된 법해석과 집행’을 촉구했다.

여성의전화 측은 이 외에도 ▲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 증설 ▲상담서비스와 쉼터 서비스 연계 ▲초·중·고교 교육에서 부부간 성폭력을 포함한 가정폭력을 구체적으로 교육할 것 등을 제시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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