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꿈을 파는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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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여성영화제 때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다큐멘터리 <드림 걸즈>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다카라즈카’라는 단어가 단순히 일본 도시의 지명이 아니라 지독히 인상적인 여성 가극단의 대명사로 각인됐을 것이다. 일본 최초의 가극단인 다카라즈카의 역사는 19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시자는 한큐 전철(일본의 사철 私鐵)의 아버지 고바야시 이치조다. 수많은 일본 여성의 동경의 대상인 다카라즈카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나라의 여성국극처럼 여성으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악극의 주요 내용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완벽한 로맨스’로 일본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지난 9월 27일, 1964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 <베르사이유의 장미> 초대 앙드레 역을 맡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슐리 역 등 굵직한 남성 역할을 맡으며 춤의 재능을 높이 평가받아 다카라즈카 가극단 제일 가는 무용수로 두각을 나타냈던 배우 타지마 쿠미 씨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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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림 걸즈>의 한 장면.

- 한국에도 ‘여성국극’이 있다. 하지만 현재 활발하게 대중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의 다카라즈카는 여전히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특유의 토양과 문화, 생활, 문화 등 일본과는 복합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일본에서 다카라즈카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88년이라는 긴 전통이 일단 다카라즈카의 가장 큰 힘이다. 여성국극의 경우 한국전통의 국악을 기본으로 하지만 다까라즈까는 테마 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탱고, 탭 댄스 등 모든 장르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대중적으로 풀어낸다. 대중성을 끌어내는 힘이 거기 있는 듯 하다. 다양하게 시도하되 일본적으로 풀어낸다. 다카라즈카에 있어서 ‘관객’은 아주 중요하다. 관객의 위치 자체가 틀리다. 팬들이 다카라즈카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의 요구를 관객들이 정확하게 반영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다카라즈카의 힘, 대중성은 거기에 있다.”

- 다카라즈카를 이끄는 주요 원칙이 무엇인가.

“다카라즈카는 조그만 도시에서 ‘신부수업’의 일환으로 시작됐지만 근본적인 이념은 ‘자립적인 여성’이다. 단지 예능 무대만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대인물을 만들어 가는, 인간으로서의 무대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동생활, 단체생활의 경험이 몹시 중요하다. 다카라즈카는 기숙사 생활을 통해 일종의 여성공동체를 지향한다. 단체생활을 통해 무대 속의 일치감과 일체감을 표현한다. 지금은 시대의 흐름이 많이 바뀌었고 그런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다카라즈카가 지향하는 여성훈련의 이념을 지키려 한다.”

- 재정지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여성으로만 구성된 다카라즈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은 설립자인 고바야시 이치조 상의 정신과 재정적 지원이 아닐까 한다. 정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기업가이자 문화인이었던 그는 한큐 전철의 창립자로 다카라즈카의 재정적 후원을 뒷받침해왔다. 정부의 지원은 없다. 현재도 한큐 전철에서 일체의 지원을 맡는다.”

- 현 단원들의 연령대와 구성은?

“단원으로 활동하려면 먼저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15∼18세까지 입학 시험을 칠 수 있다. 2년간의 양성과정 예과, 본과를 거치면 졸업 후 무대에 서게 된다. 18세∼20세 즈음 졸업 이후 처음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성공하기까지 10년 정도가 걸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톱스타들은 30세 정도가 된다. 성악·연극·무용 등 다양한 전공과가 존재하며 400여명의 단원들로 이뤄져 있다. 다카라즈카는 배우 뿐 아니라 가발이나 신발 등 소품에서부터 조명까지 모든 영역을 자체 내에서 소화하고 해결한다. 지금까지의 졸업생은 3천 500여명 가량 된다.”

- 선발 기준이 엄격하다고 들었다. 성적이나 외모 등.

“해마다 선발 기준이 필요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남자 역할이 더 많이 필요한 해에는 그 기준에 맞게 인원을 충당하는 식으로 선발한다.‘딸 역할이 필요하다, 무용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등등 해마다 역할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성적도 주요한 심사기준이며 지원하는 여성들은 많은 편이다. 현재 20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도 다카라즈카 지원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 단원으로서 독신을 고수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다카라즈카는 ‘꿈과 낭만(로맨스)’을 무기로 한다.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꿈과 낭만이라는 주제가 무대에 효과적으로 표출되기 힘들다. 다카라즈카는 꿈을 파는 비즈니스다. 젊은 여성들의 에너지나 감동의 근원이 되는 파워가 결혼 이후에는 표현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배우 본인들뿐만 아니라 팬들의 상상 이미지도 떨어진다.”

- 다카라즈카에 열광하는 소녀 팬들이 특히 많은데.

“다카라즈카의 힘은 현실에 없는 남성을 그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로맨스 판타지를 무대에 올린다. 공연을 보면서 그런 판타지에 많은 소녀 팬들이 매료된다고 생각한다. 남성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완벽한 남성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남성 역할을 하는 배우지만 정말 어렵다. 따라서 여러 가지의 훈련이 필요하다. 적어도 제대로 남자 역할을 하려면 10년이 걸린다. 상대역을 ‘들고 돌리는 힘’까지 키워야 한다. (웃음)”

- 남성 역할을 주로 하다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딜레마나 고민들도 있을 듯 한데.

“25년 동안 남성 역할을 하다보니 완전히 몸에 배었다. 보통 44세 즈음 극단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극단을 나온후 몸에 배인 버릇들을 버리기 위해 정말 고생했다. 다카라즈카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기 싫을 만큼 일상에서 이질감이 컸다. 다카라즈카의 오랜 생활이나 삶의 경험을 어깨에 걸치고 사회에 복귀하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와 거리감이 있으니까. 일어나 보니 전혀 다른 세계에 ‘뻥’ 하고 떨어진 듯이 어리벙벙한 느낌이었다. 현재는 주로 노래나 춤을 가르치고 방송국이나 여러 행사에서 다카라즈카에 관한 소개도 하면서 바쁘게 지낸다.”

- 예전에 한국의 여성 국극의 역사를 그린 작품을 보니 ‘내부연애금지’가 암묵적으로 중요한 규율이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다카라즈카의 경우에도 내부의 연애가 존재할 듯 한데 특별한 규율이 있나.

“연애에 관한 특별한 내부 규율은 없다. 강제적으로 금지하거나 하는 것은 없다. 내부에서 커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럼으로써 무대가 더 훌륭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연애가 작품으로 긍정적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 여성으로만 이뤄진 공간에 몸담으면서 ‘여성’에 관한 철학이 남다를 듯 한데.

“아름다운 여성이란 한마디로 하면 ‘강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 여성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전세계적인 테러 사건이라든지 전쟁과 폭력의 징후 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 현재 다카라즈카는.

“요즈음은 외국공연을 통해 세계적으로 다카라즈카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현재는 해외공연을 통해 다양한 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외국에서는 일본 전통색이 짙은 작품을 위주로 공연하는데 외국의 경우 여성만으로 이뤄진 단체라는 점을 매우 흥미로워한다.”

- 한국공연 계획은.

“좋은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다카라즈카 공연을 꼭 하고 싶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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