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 즉, 열등감이 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을 감추기보다는 역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열등감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콤플렉스가 있다. 나는 이를 ‘주류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나는 애초부터 소위 말해서 주류에 끼지 못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우선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게다가 넉넉하지 못한 데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집안에 태어났으니 주류의 근처에도 못 간 셈이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나는 비주류적인 성향이 많다.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소외당하고 약한 사람에게 늘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류의 잣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주류에 끼지 못해 비주류가 됐다는 혐의를 받게 될 것이 두려워 나는 내놓고 비주류를 자처하지도 못한다.

대학시절 데모를 하는 학생이 학업성적이 나쁘면 교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이 자신의 기본 의무인 공부도 못하면서 운동은 무슨 운동. 어차피 졸업할 성적도 안되니까 영웅심리에 운동이나 하려는 게지.”

마치 직장여성이 가정에 소홀하면 직장 일을 잘하는 것조차 흠이 되는 것처럼 사람은 항상 주류의 잣대로 재단된다. 그래서 나는 주류에게서 인정받을 때까지 절대로 나를 비주류로 전락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었겠는가. 여성들이 여성학이나 여성정치에 대한 연구를 기피하는 것도 비주류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는 노력의 한 증거다.

이런 결심이 흔들린 적이 있다.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서다. 학생운동을 하다 혹은 노동현장에 들어가 제적된 친구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만 졸업장을 받는 것이 편치 않았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일단 졸업장을 받는 순간 소위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초심을 잃지 않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진짜 뭔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3일 밤 눈물을 쏟으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다른 사람은 나를 믿지 못해도 나만큼은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권의 이상에는 함께 하지만 그들의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만큼 이상적이지도 순수하지도 못하다. 결국 나는 나에게 맞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유학을 갔고 교수가 됐다.

하지만 지금도 나의 현재 모습에 대해 회의가 드는 때가 적지 않다. 언젠가라는 미래를 담보로 결국 나는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뭔가를 바꿔보겠다며 의욕을 보이지만 결국은 주류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생각만 있고 실천은 못하는 또 하나의 실패자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초조감이 나를 수시로 괴롭혔다.

그러나 최근 MBC와 오마이뉴스의 보도는 이러한 나의 갈등에 명확한 해답을 주었다. 보도의 주인공은 대구지검 상주지청의 구자헌 검사다. 우리 사회에서 검사는 권력의 핵에 위치한 전형적인 주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소외당한 여성을 위해 큰 일을 해냈다.

매춘행위를 강요 당해온 여성들이 윤락업소를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판 노예문서로 불리는 ‘선불금 차용증’ 때문이다. 이 ‘각서’는 마치 매춘여성들이 업소 주인으로부터 선불을 받은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팔아 넘긴 전 업주나 소개인들이 받은 것이다. 결국 매춘여성이 업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해도 업주는 이들을 고소할 수 있고 그 동안 법원과 검찰은 혐의를 인정해 여성들을 구속처리 해왔다.

이제 업소여성들이 더 이상 사기죄 고소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구 검사가 사법사상 처음으로 “윤락업주의 선불금 사기죄 고소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 차용증은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의해 법적인 효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업주들은 이를 업소여성 협박용으로 사용했다. 구 검사는 지난 1997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2000년 2월 대전지검에서 처음으로 검사생활을 시작했으니 검사로서는 햇병아리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신참검사도 하는데 왜 기존 검사들은 하지 못했을까. 구 검사는 누가 했어도 자신과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기존 검사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업주들은 폭력배는 물론이고 지방의 유지나 권력자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검사가 그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때에는 신변의 위협은 물론이고 인간관계의 단절도 감수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뜻을 펼치겠다고 권력을 추구하지만 일단 주류에 속한 다음에는 더 이상 뜻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좀 더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 위로 올라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서 통하는 규범을 따르고 자신의 이상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올라가다 보면 위는 끝없이 높고 결국 언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경력으로 국회에 진출했지만 대통령후보의 친위대가 되어 폭로정치에 앞장서는 이재오 의원이나 김문수 의원 같은 사람을 보면서 사람들은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아직은 그들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이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 옳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못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연속이 바로 그 미래이기 때문이다.”

구자헌 검사와 이를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민주당의 조순형 의원이 바로 이런 소중한 사실을 내게 일깨워준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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