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싸우고 있나

한 주일에 한 번 그것도 거르지 않고 매번 의미 있는 날이 찾아오는 것은 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선 매주 수요일마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일을 할 시간에 그들은 시위를 한다. 반정부적인 테러도 아니며 화염병이 난무하는 폭력도 이 시위에는 없다. 다만 낮은 목소리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를 열망하는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소수의 시민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991년 1월 16일 시작된 이래 10년 넘게 계속돼 왔다.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왜 시위를 했는가. 그 동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는가.

나는 작년 8월 학교 과제로 처음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광복절과 수요일이 겹쳤던 그 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며 전경들은 ‘만약에 일어날 폭력사태’에 대비해 힘없는 시위 참여자들 앞에 곤봉을 들고 일렬로 서 있었다. 꼭 1년 1개월 만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서서 이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다.

일본대사관은 그야말로 철의 요새와 같다. 높고 두터운 철문과 전경들은 오늘도 ‘만약에 일어날 폭력사태’에 대비해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렇다. 얼마나 무섭겠는가. 10년을 빠짐없이 투쟁해온 이 할머니들이 얼마나 무섭겠는가.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은 매주 수요일 12시면 이와 같은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도희 간사는 이 외로운 싸움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것을 걱정한다. 끊임없이 언론에서 보도하고 방송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소수의 투쟁을 금새 잊고 만다. 그러나 낮아지는 인지도와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일본정부가 사죄할 때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526차 시위에서는 여성문제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경과보고가 있었다. 우리가 종군 위안부 문제를 단순한 역사적 문제가 아닌 여성의 인권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명백한 ‘성폭력’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타인의 행복을 빼앗고 상처를 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누구도 타인의 인권을 빼앗고도 사죄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는 소수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약자들은 ‘인권유린에 대한 보상과 사죄’를 주장하지만 내가 보는 일본대사관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굳게 닫혀 있다. 더구나 문제는 내부에도 있다. 한국에 과연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존재하는가. 7차교육 과정이 얼마나 변화된 교육을 할지도 의문이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없이 학생들이 ‘인권과 여성문제’를 생각하는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모순이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는 수요시위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정말 가슴아픈 비극이다. 성폭력의 가해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은 더욱이 용납할 수 없다. 종군 위안부 문제는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 더 많은 사람들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수요시위 장소를 찾아가는 길은 쉽다. 안국역 ‘인사동쪽 출구’로 나와 한국일보 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정오부터 1시까지 진행된다. 할머니들은 상처를 갖고 계신 분들이라 외부사람들이 쉽게 말 걸기 어렵지만 ‘참여’는 싸우는 모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장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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