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여성이미지 깨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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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드는, 여성을 위한, 여성의 잡지’를 표방하며 1972년 등장한 <미즈>는 여러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우선 그 이름부터가 시대의 통념을 깨트렸다. “남자를 호칭할 때는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미스터(Mr.)만을 쓰면서 왜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미스(Miss), 결혼한 후에는 미시즈(Mrs.)라는 호칭을 써야하는가.” 당시 잡지 창간을 주도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남자들이 기혼·미혼을 가르지 않는 것은 성적인 방종을 할 때 그같은 구별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이런 차별을 뛰어넘는 새로운 호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타이넘과 그의 동료들은 ‘미즈’라는 새 호칭을 만들어냈고 잡지 이름도 <미즈>라 정했다. 후에 ‘미즈’라는 호칭은 <미즈>의 성공과 함께 사람들에게 급속히 퍼져나갔다.

<미즈>가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참신함을 넘어 무모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성운동을 잡지로’라는 <미즈>의 편집방향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1970년대 초 주류 언론들은 여성이슈를 아예 묵살하거나 설사 보도한다 해도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비난의 뜻을 담고 있었다. 또한 기존 여성 잡지들은 오직 소비를 위해 여성의 허영심을 부추겨댔고 남성의 시선으로 재단된 여성의 모습만 보여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에 여성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여성의 진정한 벗이 되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스타이넘은 언론계에 있던 여성들과 전문가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스타이넘과 클레이 펠커(<뉴욕>의 발행인)가 공동 창간한 <미즈>의 창간호는 1972년 1월에 나왔다. ‘주부가 직면하는 진실의 순간’, 성차별적인 언어의 폭로, 낙태, 양성평등한 자녀키우기, 여자를 사랑하기 등의 기사를 실은 <미즈> 창간호는 기존 여성잡지가 여성의 역할을 요리·패션·집안 가꾸기로 한정한 것에 저항했다. 이를 보고 주류 언론에서는 ‘조율 안된 피아노의 C#처럼 신경질적인 소리’‘정신분열적인 여성이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대는 소리’라고 매도했지만 <미즈> 창간호는 예상을 깨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미즈>는 8일만에 30만부가 팔리고 일주일만에 정기구독 신청 2만 6천건과 2만통의 독자편지를 받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독자들의 이런 성원에 힘입어 <미즈>는 곧 계간에서 월간으로 발행하게 됐고, 70년대 중반에는 정기구독자만 50만 명에 이르는 등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1979년에는 60만부, 1980년에는 75만부가 꾸준히 팔려나가면서 <미즈>는 드디어 유명 잡지로 자리잡았고, <미즈>의 편집장 겸 사장을 맡았던 스타이넘은 <미즈>의 성공으로 미국 여성운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미즈>는 그간 여성 유명인사들로 하여금 낙태 금지법안을 없애는데 앞장서게 만들었고 남녀평등헌법 수정 조항을 설명, 주창했으며 대통령 선거시 여성이슈를 최초로 평가했다. 또한 아내구타와 성희롱을 표지에 올렸고 포르노에 대한 페미니즘적 저항을 다루었으며 데이트 강간에 관한 본격적 연구를 시작했다. 또한 <미즈>는 앨리스 워커, 에리카 융, 수잔 파루디 등 지금은 널리 알려진 페미니스트 작가들을 위해 지면을 내주었고 미국 잡지산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전문인들을 배출해냈다.

그러나 이렇게 미국 여성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성공한 <미즈>가 비즈니스에서도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 경기 침체에 더해 주요 스태프를 잃는 바람에 <미즈>는 경영이 악화되면서 결국 1987년 경영권을 호주의 통신 기업인 존 페어팩스 주식회사에 1천 500만 달러에 넘겨야 했다. 1990년에도 <미즈>는 7개월간 휴간되다 1991년 광고없이 회원제로 운영되는 격월간 잡지로 재창간됐다. <미즈>의 경영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으로 인해 광고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에스콰이어>지가 면도용 크림 광고를 얻기 위해 면도하는법에 관한 기사를 실을 필요가 없듯이 우리가 샴푸 광고를 얻기 위해 머리감는법에 관한 기사를 실을 필요는 없다고 광고주들을 설득했지만 그들은 다른 여성지들처럼 내용 중에 패션·음식·미용 등에 관련된 기사가 있을 때만 광고를 주겠다는 것이다.”

스타이넘은 이같이 말하며 <미즈>는 판매보다 광고에서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간의 경영악화와 관련해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스타이넘은 “단지 각종 판촉활동과 설문조사 실시 등 발행부수 증가를 위해 투자하는 소유주가 없었던 것뿐이지 독자 부족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즉 <미즈>의 경영 악화는 잡지 내용이 시대착오적이라거나 여성운동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대다수 잡지는 생명이 길다 보면 권위나 독자 수 등에서 그만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여성운동이 일시적 유행 정도로 간주되다 보니 우리 잡지는 그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스타이넘의 이런 이유있는 항변은 투자자들을 움직여 1998년 3백만 달러에 다시 <미즈>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었고 최근 스타이넘은 편집장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지난 30년 동안 <미즈>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여성운동은 가정 밖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여성도 남성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금녀의 직업에 도전했고 법적인 평등을 이루어냈다. 이제 <미즈>는 가정 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대다수 여성들은 직장과 육아 등 두가지 일을 해내느라 곤경에 처해있다. ‘슈퍼우먼’에 대한 기대감을 타파하고 ‘남성도 여성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는 것, <미즈>가 추구하는 21세기의 과제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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