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오는 10월 15일 분단이래 처음으로 열리는 ‘제 1회 남북여성통일대회’를 통해 600여명에 달하는 남과 북의 여성들이 금강산에서 만남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남북여성통일대회는 여성들이 주체가 돼 만든 자리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통일운동의 새 역사가 쓰여질 그날을 앞두고 여성 통일운동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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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차원 남북교류의 첫 물꼬를 튼 것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지난 1991년 일본에서 개최된‘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는 민간 차원 남북교류의 첫 출발이었다. 특히 1992년 평양에서 열린 2차 토론회의 경우 민간이 공식적으로 판문점을 통과한 최초의 사례임에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을 기조로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교류 등 남북 여성은 활발한 교류를 진행해왔다. 10월 3일 최초로 열리는 남북 개천절 행사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고기효 여성위원장을 비롯한 십수명의 여성들이 참가하는 것 또한 이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한의 여성들은 북한의 여성과 만나면서 서로의 차이와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통적인 문제를 확인했다.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통일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생활에 밀착된 통일 운동을 모색하게 된 원동력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통일을 내 일로 인식하는 여성 늘어나

여성들의 통일 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999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여성 1천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의 통일의식 조사 분석’에 따르면 응답자 자신이 평화통일을 위한 역할에 참여해야 한다는 응답이 86.5%로 나타났다. 여성은 통일운동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다는 통념을 깨는 구체적 증빙자료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어떤 통일을 원할까. 1998년 대한주부클럽연합회가 20세 이상의 여성 1천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성의 통일의식 조사를 보면 통일을 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전쟁의 불안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38.9%로 가장 높았다. 이는 여성들이 한민족이라는 명분보다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통일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성 통일운동은 크게 민간교류와 평화통일교육이라는 두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김현숙 공동대표는 “통일운동은 남북간에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적대감을 버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화해와 치료를 기반으로 한 남북 화해 운동이 여성통일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통일운동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통일 운동이 통일방안 중심의 정치적인 이슈 위주로 진행되면서 평화교류를 주축으로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 교류가 주로 경제적인 차원에서 진행됨에 따라 경제적 약자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드러날 공간이 부족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정현백 공동대표는 그동안 통일정책 논의나 통일운동에서 여성의 주도적 참여가 부족했던 이유에 대해 “유교적 전통과 분단현실에 의해 강화된 가부장적 사회분위기는 통일정책 분야를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여성 참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통일운동

통일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과 참여의지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활동에 주목할 요소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성들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높기 때문에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벌이는 데 적극적이다. 남과 북의 다름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교육을 기반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에 진심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은 여성 통일운동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 사회 바로 알기, 북한 동포 돕기, 북한 이탈 여성 지원, 일상에서의 평화 교육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한YWCA 등에서 진행하는 평화통일 교육은 대중들에게 통일을 나와 가까운 일로 여기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간교류도 마찬가지다. 내달에 열리는 남북여성통일대회가 정례행사로 자리잡으면 민간 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대회의 남한측 단장을 맡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이김현숙 대표는 “앞으로는 남북여성통일대회를 분야별 모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여성 경제·언론인·학자들 간의 교류를 우선적으로 추진, 점차 만나는 범위를 확대시켜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통일여성대회는 지속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차곡차곡 쌓여왔던 여성 통일운동의 힘이 이제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큰 주역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말에서 읽어낸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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