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얻어도 건강 잃으면 소용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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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봉천11동에 위치한 ‘우리탕제원’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생활공동체다. 각각 43년과 35년을 복역한 안학섭씨, 김해섭씨와 함께 우리탕제원을 운영하고 있는 양희철(69세)씨는 정식 한의사는 아니지만 투옥 중 독학으로 배운 한의학에 누구보다도 정통하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무료로 침과 뜸을 놓고 재료값만 받고 약을 지어주기 때문에 탕제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추석을 전후해 고향 어른들께 드릴 보약을 주문하는 사람들로 탕제원은 그 어느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는 양희철씨는 이렇게 봉사하는 삶이 즐겁다.

“백부가 한의사여서 어릴 때부터 침놓는걸 보고 자랐죠. 성장해서는 함께 하숙했던 친구가 동양의대(경희대 전신)에 다녔구요. 침술은 그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의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감옥에서 입니다. 비전향수들은 아파도 아픈 티를 못냅니다. 의무과에 이야기하면 그때부터 바로 전향공작이 들어오니까요. 이거 고쳐줄테니 전향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니 참으면서 스스로 치료할 방도를 구할 밖에요.” 이렇게 시작된 침술은 점차 전문가적인 경지에 이르러 수감자들이 아프면 의무과보다 그를 먼저 찾을 정도였다. 교도소장도 그에게 저명한 한의사를 연결해줘 일대일 교습을 받도록 배려해줬다.

36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1999년 3·1절 특사로 풀려나온 양희철씨는 천주교의 지원으로 그해 5월에 우리탕제원을 열고 비전향 장기수들과 공동체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침술과 약으로 병을 고친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탕제원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탕제원을 찾는 사람이 하루에도 20∼30명이 족히 됐다. 그러자 주변 한의원들이 단합해 불법시술을 이유로 그를 고발하는 일이 잦았다.

“저는 대한침구사협회 정식 회원입니다. 박정희 정권 때 침구사가 한의사에 예속됐는데 이 둘은 분리해야 합니다. 지금 이를 위한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의사들 입장에서 보면 제가 불만이겠지만 저는 최대한 그들을 존중하고 상도덕을 지키면서 탕제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지방 손님을 받고 이 주변 분들은 근처 한의원으로 갈 것을 권유합니다.”

민족의학이 양의학에 밀려 대체의학이 되는 세태와 한의대생들이 침구술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교육실태를 개탄하는 양희철씨는 현재 경희대생 몇 명에게 자신의 침술을 전수하고 있다. 두해 전 결혼한 부인 김용심씨와도 이런 과정에서 만나게 됐다.

경희대 약학과 출신인 김씨가 양씨에게 한의학을 배우게 되면서 서로 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결혼은 30년이라는 나이차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8월 늦둥이딸 지담이의 돌을 맞기도 한 양씨는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가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부터 가사분담과 평등한 부부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양씨는 지담이를 맡기고 데려오는 일, 씻기고 입히는 일, 설거지, 청소 등 양육과 가사를 자신의 일로 기꺼이 분담하고 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세 가지를 실천하면 됩니다. 첫째 폭식·폭음하지 말 것, 둘째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할 것, 셋째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것. 이것만 지켜도 기본적인 건강을 항상 유지할 수 있습니다.”

(02)888-6231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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