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사학 자처하는 두 학교의 학벌주의

남성중심적 ‘고대문화’에 문제제기

고연제는 현재 고려대학 내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5월에 축제가 있긴 하지만 참여도를 보나 분위기를 보나 고연제가 고대생에게 가장 의미있는 행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연제를 단순한 축제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은 고연제가 양대 명문사학이라는 학벌을 기초로 해 이루어지며 집단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고대문화의 많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9월 16일부터 고려대 곳곳에서 안티 고연제를 외치는 자유발언대와 게릴라 선전전이 열렸다.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열린 주제마당에서는 학벌 반대, 소수자 차별 반대, 학교의 상품화 반대 등의 주제에 대해 각 주제별로 구조물을 전시했고 27일 문화제가 개최됐다.

고연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무엇보다도 고연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현재의 대학 서열구조다. 대학 서열이 없다면 고연제가 이렇게 강한 지속성과 참여율을 보일 수 있을까? 왜 다른 학교도 아닌 연대와 고대가 서로를 상대로 경기를 벌이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고연제가 학벌체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지금의 고연제는 학벌 체제에서 비슷한 대학 서열을 차지한, 명문사학을 자처하는 두 학교가 학벌 우월의식을 즐기는 ‘그들만의 축제’다.

고연제를 통해 고대인의 정체성, 맹목적 애교심은 더욱 강화된다. 고연제 기간 내내 이루어지는 응원은 대개가 연대를 비하하고 고대의 우월감을 조장하며 또한 자신이 고대생임을 재확인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갖는 자부심은 학교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아닌 학벌에 기댄 엘리트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과 고연제 기간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합리화 도구가 될 수 있다. 고연제 동안 학생들은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잠실과 신촌 혹은 안암을 점거한 채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려 한다. 거리를 점거한 채 이루어지는 응원과 기차놀이 속에 질서와 배려는 없다.

고연제에서 학생들이 향유하는 것은 비단 학벌에서 비롯된 우월감만은 아니다. 고연제에서 고대생이 즐기는 소위 ‘고대문화’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FM, 사발식, 응원 등 고대생의 통과의례 속에서 고대문화는 강한 집단성을 띠며 강요되고 있다. 고대문화의 집단성은 자연히 그 속에서 소외와 배제를 낳는다.

고대문화의 남성중심주의가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고대문화에서 여성성은 배제된다. 고연제뿐 아니라 남자 선배 주도로 이루어지는 새터, 신입생환영회, 4·18 등의 행사들은 하나같이 ‘고대인’을 외치며 응원으로 하나됨을 강요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을 비하하고 힘을 과시하는 기존 남성중심적 문화는 재생산, 강화돼 주류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반해 여성들이 그녀들의 문화를 만들어 갈 가능성이나 여성적 가치들은 묻혀지고 있다. “고대 고대 고대 우리는 하나다!”라는 외침 속에 여성과 장애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연전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학생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뿐만 아니라 학교측의 막대한 지원이 없다면 고연제는 열릴 수 없다. 대학은 교육을 위한 공간이지만 현재의 학교나 재단에게는 투자의 대상인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측은 고연전에 투자함으로써 맹목적인 애교심과 학벌의식 강화의 기능을 충분히 이용한다. ‘최고의 사학’이라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우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행사가 계속됨으로써 ‘최고 사학’의 지위가 유지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학벌을 계속해서 이용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진정한 교육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화려한 외양에 치중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해마다 계속되는 고연전은 이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학교에 의한 대학과 교육의 상품화, 학벌체제, 고대문화의 집단성 등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마고

응원가만 들어도 학교 오기 싫다

연대생들의 연고제 대안 모임 ‘알타리’

“나는 낄 수 없는 방식의 기차놀이. 마땅히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이 없는 것. 축제 문화가 있는 것은 좋지만 왜 하필 연고제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우리는 이 축제에서 주변인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누군가는 추석을 떠올리겠고 누군가는 높은 하늘을 떠올리겠지만, 아마 연세대 학생이라면 지금 이 시기에 ‘연고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연고제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학교로는 모자라 신촌 거리를 가득 메운 연고제 관련 플래카드들과 학내에서 울려 퍼지는 응원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대생이라면 누.구.나. 고대와의 싸움에서 연대를 응원하며 당.연.히. 즐거워 할 거라 믿.어.지.는. 연고제가 이제 시작인 것이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응원과 기차놀이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이라는 생각은 우리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4만 연고인을 하나로 만든다는 연고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심심찮게 나왔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연고제를 전후로 학교 게시판에서는 엘리트주의나 소비지향적인 문화에 대한 논쟁들이 오갔고 그 때마다 연고제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 해 고대에서 처음으로 안티연고제 활동이 공개적으로 벌어져 관심을 끌었었고 올해는 연대에서도 연고제가 대학인의 자치와 교류의 장이 아닌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명문 사학 엘리트들의 축제로 변모해 가는 것을 비판하는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모두의 축제로 연고제를 만들고자 하는 이 모임은 반대가 아닌 대안의 연고제를 고민한다는 의미에서 ‘알타리’(alter-y(yonsei)에서 따온 말이다)라고 이름을 붙였다. 알타리 모임은 이름만큼이나 당돌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 연고제를 지금 思(생각하고) 있는지. 으레 하는 당연지사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연고제 속에 담겨 있는 학벌체제, 비장애인 중심, 여성배제적 문화 등 찌든 때를 같이 벗겨내자고 말한다.

당/연/지/사/ 알타리 모임이 지난주 실시한 연고제에 대한 기획 자보전과 설문조사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연고제 문화에 문제의식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문제인 만큼 많은 학우들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응원가만 들어도 학교 오기 싫다’는 스티커를 더 이상 붙일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응답했고 전철 안에서 벌어지는 응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학우들이 많았다. 알타리 모임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 중에는 1학년들이 많은데 보통 새내기들이 연고제에 기대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임을 드러내 주었다. 오히려 새내기들의 눈에도 연고제는 뭔가 마뜩찮은 부분들이 많이 보였나보다.

알타리 모임에서는 이런 학내 분위기를 살려 학우들이 손쉽게 동참할 수 있는 활동들을 준비중이다. 이번 주에는 연고제에서 바뀌기를 바라는 것들을 담은 소망 부적을 나눠주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펼친다고 하니 자신이 이번 연고제에서 바라는 점을 적어서 가지고 다녀도 좋겠다. 깊이있는 연고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고민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연고제 기간에만 반짝하는 이벤트성 행사로 끝내지 않겠다는 것이 알타리 모임의 입장이다.

밤새도록 기차놀이를 하는 비장애인들이 신촌에서 장애 학우들이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은 두세 군데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응원가 마초맨을 신나게 따라 부르는 많은 이들이 그 응원가를 차마 같이 할 수 없어 침묵하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이들의 불편함을 깨닫게 될 때, 연대생들이 전철 안에서 자랑스럽게 외치는 응원이 현행 학벌서열 구도 속에서는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알아챌 때, 그 때 더 이상 여성도 장애인도 그 어떤 사회적 소수자도 주변인이 되지 않는 자치와 교류가 살아 넘치는 연고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연고제를 지금 새롭게 고민해봄이 어떨까.

혹시 알타리 모임이 궁금하다면 www.freechal.com/altery로 방문하면 된다. 대안적인 연고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한다.

김이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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