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 이어 민우회‘ 2002 최악 방송프로그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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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가 최근 시민단체들의 연이은 방송 모니터링 발표 결과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달 23일 여성단체연합이 ‘평등·인권방송 디딤돌, 걸림돌’을 선정 발표한데 이어 지난 12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도 ‘2002 최악의 방송 프로그램’을 선정 발표했다. 잇따른 시민단체들의 해악 프로그램 선정은 최근 위험 수준을 넘어선 TV의 선정성, 폭력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방송가에선 사전 언질도 없이 깜짝쇼를 하듯 발표하는 시민단체 측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제작진과 방송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최악의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3사가 올 봄 개편부터 가을 개편 사이에 방송한 프로그램 중 문제점을 가장 많이 드러낸 프로그램을 선정한 것.

운동본부는 KBS 2TV의 <개그콘서트>와 <아침마당>의 부부탐구 코너,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최악의 프로그램으로 발표했다. 선정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으로 건강한 가족, 여성의 평등한 삶 등의 항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일방적인 통고라며 반발하고 있는 분위기다. <아침마당> 제작진도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고 촌평했다. 이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김정수 PD는 “프로그램의 애초 기획의도는 무시한 채 내용의 선정적인 부분만 발췌했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사전에 제작진에게 한마디 통보나 상의없이 뒤통수치는 격으로 최악의 프로그램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제작진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다름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우회 강혜란 미디어운동본부 조직부장은 “모니터 보고서는 평상시에도 민우회 게시판에 공개해왔다”고 반박하며 “수용자층의 끊임없는 지적을 실상 무시해왔기 때문에 강도높은 공개 방식을 취해야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잇따른 ‘최악’ 선정에 방송가 심기 불편

여연 이어 민우회‘ 2002 최악 방송프로그램 ’발표

한편 김씨는 “<부부탐구> 꼭지는 10년 이상 장수해 온 코너로 이혼하려는 부부들이 아닌, 부부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갖고 있는 부부들을 출연시켜 필요한 조언을 제공하려는 것”이라며 “폭력, 도박, 외도 등 대부분 남편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개 남편이 공개적으로 욕을 먹는 게 실상”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에게 무조건 희생, 순응을 강요하진 않는다”면서 “금전 등의 문제로 다른 해결통로가 없는 부부들에게 상담을 제공하려는 것인데 불평등한 성역할을 타파하려면 무조건 여성이 가정을 뛰쳐나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민우회 측은 “3월 5일 방송분의 경우 반복적 외도, 폭력을 일삼아온 남편을 탓하는 부인에게 무던히 참으라는 내용의 상담을 해주었다”고 모니터 내용을 근거로 반박했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부부들이 방송 출연 이후 실제로 변화의 의지를 보인다고 하지만, 패널의 개인적 경험에 의존, 여성이 감싸안아야 한다는 식의 충고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 밖에 <개그콘서트>와 최종 후보작에 포함된 <서세원쇼>는 여성단체연합이 지목한 걸림돌 프로그램에도 선정된 바 있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눈이 대체로 일괄적임을 드러냈다. <개그콘서트>는 여성 및 소외계층 비하와 선정적인 언어 사용이 문제로 지적됐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귀신, 악몽 등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불분명한 아이템 남발, 적절치 못한 방송시간대 등이 문제가 됐다. 올해로 세 번째인 이번 프로그램 선정에는 140여 명으로 구성된 시청자 평가단과 어린이 90여명이 참여하는 어린이방송평가단이 참여, 인터넷 상에서 공모된 자발적 시청자 운동의 한 전형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우회는 이를 근거로 담당 제작진은 물론 방송사에도 통고문을 보낸 상태다. 앞으로 방송사 담당자 및 방송위원회 관계자를 면담하고 시청 거부 캠페인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해당 프로그램 광고주들에 대한 면담 신청도 고려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일 것인가와는 별도로 문제제기 방식에 대해 충격요법을 써야 하느냐는 회의론은 일견 수긍이 갈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방송사의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이 계속되고 방송사가 수용자층의 비판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는 한 수용자들의 충격요법식 문제제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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