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미디어와 성 정체성’ 토론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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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여성커뮤니케이션연구회와 한국언론학회 공동주최로 ‘미디어와 성 정체성’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과연 미디어가 기존 성 정체성의 남녀 경계를 유지 또는 강화하는가, 혹은 성 정체성을 새롭게 재규정하고 형성할 가능성은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미디어의 확장 속에서 지난 2000년 이후 사회적 이슈로 제기됐던 ‘팬픽’(팬들이 쓰는 이야기, 혹은 소설(fiction)이라는 뜻의 합성어 팬픽션(fanfiction)의 줄임말) 안에서의 ‘성 정체성’ 논의가 눈길을 끌었다.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가 만연하고 있는 한국사회 안에서 자연스레 동성애 관계를 그려내고 수용하고 있는 팬픽의 코드는 10대 여성들의 성 정체성을 읽어내는 중요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정체성 형성계기

10대 여성들이 팬픽의 주인공을 대부분 남성으로 상정, 동성애 관계로 그리는 이유는 흥미롭다. 그들은 그들이 상정하는 이성애 관계 안에서 이상적인 여성을 형상화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동시에 이성애적 관계 안에 그려진 여주인공에 몰입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열등감과 거리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해 남성적 매력을 지닌 ‘공’(관계를 주도하는 역할)에서부터 탈권력화된 ‘수’(수동적인 역할)까지 팬픽을 통해 다양한 남성성을 즐기고 있다. 여성 독자들은 ‘여성성’이 강조된 ‘수’라 해도 결국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써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거리감과 열등의식을 안고 청순가련하고 완벽한(?) 여성 주인공에 동화하려고 애쓰는 대신 스타를 모델로 한 연약하고 아름다운 꽃미남 남성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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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온라인상의 팬픽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홍명보 황선홍 선수

이날 토론회에서 김민정씨(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부 석사과정 수료)는 “판타지라는 장치를 통해, 그리고 가상공간이라는 매체를 통해, 10대 여성들은 사회규범을 이탈하여 현실의 성 질서를 비틀거나 바꿔버리면서 그들만의 자유로운 성적 상상력을 즐긴다. 이는 여성들의 현실 위반적인 성적 상상력을 발휘시키면서 주류의 성적 규범과 질서를 거부하는 사이버 소수문화의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하며 “성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팬픽을 통해 성애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금기들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볼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 다양한 성애적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과 현실적이지 않은 판타지, 그 사이에서 팬픽 주체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천리안 PC통신 팬픽 동호회의 일원은 “동호회 구성원들이 팬픽을 접하고 쓰면서 ‘아, 그게 동성애인가’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시 해석하기도 한다. 강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규정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서로 사귀고 인정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깊이 있는 논의 필요

그러나 김유정씨(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정체성이란 남녀 관계의 구도 안에서 논의되고 규정되는 것이다. 여성들만 참여한 공간 안에서, 일종의 게토가 형성된 공간 안에서 정체성을 논하기 어렵다”며 “공과 수 역시 결국 남녀 이성애 관계의 지배구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결국 현실 이데올로기의 연장, 유지의 의미가 강하다”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신현준씨는 “팬픽 역시 거대 미디어에 종속된 하위문화일 뿐인데 너무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일방적으로 의미부여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팬클럽 확대를 위한 음반기획사의 전략과 닿아있는 건 아닌가”하는 의문을 표시했다. 또한 “팬픽 동호회의 경우 가입도 자유롭지 않다. 더 나은 소통을 위해 만들어지지만 자신들만의 소통으로 귀결돼 결국 게토화돼 버리는 부분에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문보미씨는 “현재는 가수들 위주가 아닌 월드컵 국가대표선수 팬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팬픽 자체를 대중가수에만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가입 제한의 문제는 오히려 2000년 정보통신부가 팬픽에 나타나는 동성애를 왜곡된 성 가치관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청소년 유해정보 등급제를 포함한 법안을 발표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팬픽 문화가 10대 여성들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담보하지 못해 한계점을 드러냈다. 오빠 부대의 팬클럽 문화 정도로 치부됐던 팬픽을 10대 여성들의 ‘성 정체성’을 읽어내는 주요한 화두로 삼았다는 진지한 문제접근에 비해 실제 논의 내용은 ‘성 정체성’ 문제로 깊이 있게 귀결돼지 못하고 ‘팬픽’에 대한 단편적이고 산발적인 접근이 주류를 이뤄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남성이 아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팬픽 속에서는 10대 여성들이 여성들의 관계를 어떻게 그려내는지, 또 그 속에 자신을 의미화하고 투영시키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고찰이 부재해 성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추상적 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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