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 있을 때 이야기다. 힘들고 고된 삶 속에서도 드디어 말년병장이 될 즈음 우리 부대에도 인터넷교육장(이하 PC방)이란 것이 들어섰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아는 나이가 차면 무조건 2년 2개월(육군)을 채워야 한다. 국가에서도 그 기간을 사회와는 격리된 채 보내게 하고 전역시키다 보니 그들의 미래가 막막할 것을 고려했나 보다. 각 부대에 컴퓨터를 보급하고 ‘인터넷정보검색사 2급’ 자격증을 위시하여 각종 컴퓨터 자격증을 따서 경쟁력 있는 사람이 돼 나가도록 격려했다. 물론 인터넷 게임과 문서작성 등 기타 여가생활도 할 수 있었다.

좋은 목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의 파문을 일으켰던 O양과 B양 비디오가 유행이라 휴가나 외박을 다녀온 이들에게는 무척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밖을 나가지 못한 이들 중 PC방을 장악하고 있던 병장들은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과의 접선을 종종 시도해 통신장교와 마찰을 빚고 유격훈련 내지는 영창 며칠 등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하루는 내가 PC방에서 <한겨레> 기사를 읽다가 박노자 교수의 ‘조교여 일어나라’라는 글을 출력했다. 그때 우리 부대에서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신 주임 원사가 혹시 장병들이 음란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아닌지 둘러보다 내 곁에 왔다. “자네는 뭘 하고 있는가?” “저는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를 읽고 있습니다” “혹시 이상한데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 “(흐흐) 아닙니다” 이어 주임 원사는 내 옆에 출력물을 집어들며 “이건 뭔가”라고 물었다. “기사를 읽다가 명문이라 출력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갑자기 주임 원사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갔잖아? 사회민주주의는 안 좋은 거잖아! 자유민주주의가 좋은 거지. 이런 거 보면 안돼”하면서 자신이 읽어본 뒤 이상이 없으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기사의 본문과 내용은 이러했다. “그 교수가 한국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고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사회를 오래 경험했고 한국 현실을 매우 예리하게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대열에 속했다는 사실을 미리 이야기해둔다”부터 시작한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 교수를 만나 차를 대접받고 이에 대한 예의로 설거지를 하려 했다. 그런데 진보적이란 교수가 “나야. 방 정리 좀 하게!”라고 전화를 하자 조교가 들어와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화분 물 주기, 책상 닦기, 쓰레기 정리 등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부당한 현실에 항거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되찾자는 주장을 폈다.

다음날 주임 원사는 행정보급관을 통해 전 부대원에게 정신교육을 시킬 것을 명령했고 우리 중대 행정보급관은 “나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그 양반이 난리를 치니까 그런 것은 밖에 나가서나 공부해라”며 나를 달랬다. 솔직히 난 직업군인도 아니고 의무복무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은 나의 자유 아닌가? 비록 육군 복무규율에는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고 돼 있다지만. 더불어 “군인은 불온유인물·도서·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복사·소지·운반·전파 또는 취득하여서는 아니되며 이를 취득한 때에는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분명히 나는 합법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의 기사를 읽었을 뿐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휴가나 외박 복귀 시 언제나 전공책을 포함해 읽을 거리를 가지고 들어갔고 그 책들은 모두 보안관의 확인을 받았기 때문에 ‘보안성 검토필’이란 도장이 찍혀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와 ‘사회민주주의는 나쁜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는 좋다’는 말이 동일한 뜻의 또 다른 우회적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이에 동의해서 입대를 한 것이 아니라 끌려와야 했기 때문에 끌려가고 싶었을 때 육군을 선택해 지원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북한’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모두 불온서적으로 간주되는 이 땅의 현실에서 ‘사회민주주의’란 단어 하나로 전 부대원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는 주임 원사는 ‘북한=빨갱이=나쁜 놈’으로 교육받아온 우리 세대 안보교육의 표본일 것이다.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비민주적인 사회, 편견과 독설을 퍼부으며 일방적인 강요를 외치는 마초적인 사상공격에 맞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옳든 그르든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진정한 열린 사회이자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사회일 것이다. 사상을 넘어 양심의 구속까지 강요하려는 군대를 그들의 외침이 뒤흔들 날이 온다면 좋겠다.

정서 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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