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전 총리서리를 위한 좌담회

김대중 대통령이 깜짝 카드로 내놓은 장상 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여러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장상 잣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을 만큼 장상 인사청문회는 이후 장대환 총리 지명자의 국회 인준 부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청문회장에서 “평생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지 몰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장상 전 총리서리에 대한 세간의 기억은 여전히 ‘부도덕했던 최초의 여성 총리 지명자’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계 원로 김현자, 은방희씨와 젊은 여성 정치학자 조기숙 교수가 장상 전 총장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자리마련을 희망해 한 자리에 모였다. 여성신문은 그 요구에 부응해 자리를 마련했다.

일시 9월 6일(금) 오후 3시

장소 여성신문사 회의실

사회 홍승희 편집주간

참석 김현자(전 국회의원, 한국여성정치연맹 이사), 은방희(한국여성단체의회 회장), 조기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회:청문회 이틀 내내 청문회장을 지키고 계셨던 은방희 회장께서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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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희 회장

은방희:인사청문회라 하면 보통 부정부패 청문회와는 다르게 세간의 의혹에 대한 공직자 본인의 소명 기회도 주고 또 공직자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잖아요. 물론 국정수행 능력도 검증해야 하구요. 그런데 이번 장상 총리 지명자 청문회의 경우 능력 검증은 차치해 두고 단지 의혹 제기 차원의 얘기를 너무 세세하게 더구나 기정사실화 하면서 마치 범인에게 여죄를 추궁하듯 몰아붙이는 거예요. 이틀 동안 청문회를 직접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저건 아닌데 싶었죠.

조기숙:가장 문제가 됐던 것이 부동산 투기를 한 것 아니냐 하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청문 위원들도 질문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투기를 정말 한 사람 같으면 본인 스스로 알고 대비를 했을텐데 ‘반포에 사신 적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없습니다’하고 선뜻 대답을 하더라는 거예요. 자기들도 놀랐대요. 그래서 위원들도 ‘이 사람이 투기를 안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쟁점이 될 듯하니까 그냥 몰고 간 거죠.

:부동산 문제를 설명할 때 진짜 투기를 해 본 사람은 그런 대답이 안 나오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법적으로 2가구가 허용이 되거든요. 어머니만 이사시키면 집 하나는 살 수 있는데 왜 불필요하게 본인들이 나가서 살았겠어요. 방을 얻어서라도 어머니를 이사시키면 되는데. 이건 법적으로 보장되는 일이거든요.

:무조건 정직하지 않다, 시모 핑계를 댄다 하면서 몰아붙였는데 가족 회의까지 했는데도 아무도 모르더랍니다. 시모는 앓아 누워 계시니 여쭤볼 수도 없고 지금까지도 본인은 답답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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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자 이사

김현자:제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장상씨의 명예 회복을 우리 여성들이 나서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는 앞으로 10∼20년 더 일할 사람이고 또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인물 아닙니까. 그런데 억울하게 당해서 부부가 고통받고 본인이 좌절해 있는 모습을 보기가 참 민망해요. 정의의 차원에서라도 이 문제는 꼭 해결하고 넘어갔으면 해요. 그런 차원에서 이 자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기사가 나가게 되면 여성신문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바른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장상씨 남편 박준서 교수가 해명 자료를 들고 일일이 오피니언 리더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실관계를 확인시키고 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아들 국적 포기 문제 있지 않습니까, 그때 소명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다 찾아냈답니다. 77년 한해 동안 한시적으로 법무부에서 국적 정리를 하도록 강요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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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교수

:그 당시는 엄혹한 유신시절이예요. 뭐가 급해서 젊은 교수 부부가 귀국하자마자 국적정리를 했겠어요. 오자마자 두 달만에 정리하라고 법무부에서 서류가 날아와 미국 국적을 포기하려고 미국 대사관에 갔더니만 자녀가 18세 되기 전까지 안 된다고 했대요. 그러니 이중국적은 안되고 미국 국적은 포기가 안되니까 할 수 없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지 미국 국적을 선택한 것이 아니거든요. 당시 비슷한 상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한국 국적을 포기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니까 78년부터 처벌은 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25년 전 일이니까 법무부에서도 잘 모른다고 했던 것이고요.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알아요.

:어제 박 교수님을 만났는데 들어보니까 정말 억울하더라고요. 저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장 전 총장께서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됐었죠? 현금은 큰아들 척추 수술을 위해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었답니다. 언제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랬던 것이죠. 아실만한 분은 알지만 두 분이 진짜 검소하게 생활하세요. 지금도 94년식 소나타 1대를 갖고 있는데 한국일보에 차가 2대 있다고 보도된 것을 보고 한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인 조카(언니 큰아들)가 전화를 했대요. “이모부님 차를 언제 또 사셨어요?” 이랬답니다. 매일 이모집에 드나들다시피 하는 조카가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그렇게 말했을 정도니 언론의 위력 참 대단하죠.

:언론이 참으로 무서워요. 아니 글쎄 신문에 난 것은 사람들이 다 믿어요. 아는 분이 대중목욕탕에서 50, 60대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무섭다고 하더군요. 그 아주머니들 말이,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잘하느냐, 총리가 되면 큰일나지 하더랍니다. 여론을 그렇게 몰고 가는 것에 놀랐고 그 말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대해 또 한번 더 놀랐어요.

사회:장상씨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오늘 처음 하는 얘기지만 YWCA 학생회장 할 때 제가 미국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리 학교에 아주 유능하고 장래성 있는 학생이 있는데 너무 형편이 어렵다,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편지를 보냈더니 10불도 보내고 20불, 30불 이렇게 수표를 보내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장상씨를 도와준 일이 있어요. 그렇게 어렵게 학생 시절을 보내면서도 늘 명랑했어요.

:장상 전 총장님은 변변한 옷도 없으세요. 옷이 항상 같은 거라 우리들이 교수님 옷 좀 사드리자고 할 정도였거든요. 은행예금이 많다고 욕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저축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저축상을 줘야지 욕을 할 일이 아니잖아요. 은행에 저축을 하지 그럼 주식 투자하고 땅 사라는 말인가요? 도대체 욕할 사안이 아닌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으니 정말 황당해요. 두 분이 월급 받으면 그 연세에 그 정도 재산은 모을 수 있죠. 검소한 것이 몸에 배인 분들인데.

:장상씨 시모가 정말 대단한 분이시더군요. 사돈과 한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하잖아요, 그런데도 시모께서는 몸 불편한 안사돈을 3년 동안 목욕도 시키고 돌봤다고 하더라구요. 시모가 그렇게까지 한 계기가 있었대요. 시모가 이태영 선생님이 하시는 가정법률상담소에 자원봉사를 나가셨는데 이태영 선생을 만나서 며느리 자랑을 하신 모양이에요. 우리 며느리가 장상 박사라고 하니까 이태영 선생께서 깜짝 놀라면서 장상씨가 살림에 신경쓰지 않도록 며느리를 도와주라고 했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이죠. 그 말 듣고는 시모의 태도가 달라지면서 이제는 전적으로 내가 살림을 맡겠다, 너는 신경쓰지 말아라 이러셨답니다.

사회:청문회 관련 언론보도 행태에 불만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에 관한 소감들을 한번 정리해보죠.

:제 전공 분야의 언론보도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오보가 정말 많더라구요. 예를 들면 총선연대 낙선운동 때문에 정치 불신이 높아졌고 쟁점없는 선거가 돼서 투표율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오히려 낙선운동이 활발했던 곳의 투표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어요.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고 학자들이 칼럼을 쓰고 인터뷰를 해서 확대재생산을 하는 거예요. 그것이 나중에는 진실이 돼 정치학회 논문에까지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더란 말입니다. 이 연구를 하면서 아, 이런 식으로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장 총장님도 그런 식으로 당한 거예요.

사실 우리 집에서도 솔직히 인준 해달라기에는 너무한 거 아닌가 뭐 이런 분위기였거든요. 우리 아버지도 ‘솔직히 서민들이 집 만들려면 그 방법 밖에 있느냐, 위장 전입했다, 미안하다 했으면 될 걸 왜 계속 모른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랬거든요. 그런데 어제 박 교수 만나고 보니까 사실이 아니더란 말예요. 본인이 정말 모르는 일이었던 것인데. 왜 이 사람이 이랬을까, 같은 여자로서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봤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총장님을 존경한다는 저조차도 사실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언론의 오보에 대해 연구까지 했는데도 언론이 그렇게 생거짓말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해봤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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