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위한 활동 주체는 학생들이어야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여학생과 남학생의 비율이 거의 동등하고 오히려 여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총여학생회는 물론이고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모임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주의가 워낙 만연해서 그런 독자적인 모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나 예술학교라는 이름답게(무슨 어처구니없는 나의 편견이었는지 예술이라는 단어에 온갖 아름다운 상상은 다 집어넣었던 것 같다) 진보적인 교수들과 진보적인 학생들의 메카인 줄 알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역시 대한민국의 다른 어떤 장소와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반 학교생활 중 여성주의에 목이 마를 대로 마른 나는 어느 날 학교 사이트에서 반가운 기관을 발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부속기관 ‘여성활동연구소’.

여성활동연구소 홈페이지에는 “연구소 설립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진로지도와 교내 각종 폭력의 예방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그걸 보자 어렴풋이 학교에서 열렸던 여성예술가들에 의한 특강과 심포지엄 등이 여성활동연구소의 이름으로 열렸던 것이 떠올랐다. 또 입학한 지 얼마 안돼서 열렸던 ‘여성예술제’라는 행사도.

여성활동연구소라는 여성 교수님들의 모임이 학생들을 위해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학생들조차도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는데 교수님들이 오히려 솔선수범해 상담을 자청해주시니 순간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임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얼마 전 영화과 교수와 여자선배 사이에서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은 왜 이 연구소의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던 것일까. 공론화되지 못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 4학년 선배와 대화하면서 여성활동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질문했지만 그 선배는 여성활동연구소가 여자교수님들의 연구 혹은 친목모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활동연구소의 홈페이지는 2000년에 업데이트된 것이 마지막이었으며 게시판도 광고성 글이 가끔씩 올라오고 있을 뿐 전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여성활동연구소의 문을 여러 번 두드려보았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학생들이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안다 하더라도 단지 교수들의 친목모임으로 오해하고 있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교내에 커다란 포스터가 곳곳에 나붙기 시작하였다. <제2회 여성예술제와 마녀들의 밤>. 주최는 여성활동연구소 학생모임. 그리고 여성활동연구소 학생모임이 행사 당일 새로운 이름을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모임이라는 단어에 흥분한 나는 물어물어 여성활동연구소 소장님으로 계시는 주성혜 교수님(음악원 교수)과 만날 수 있었다.

여성활동연구소는 여학생들을 위한 교수모임이었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학생들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교내의 여러 성정치적인 문제들을 훨씬 창의적으로,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필요성에 따라 임시로 학생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2회 여성예술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모임이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여성예술제 홍보가 효과적이었다고 하셨다. 여성예술제가 성황리에 이루어지면 여성활동연구소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정치적인 여학생 모임이 정식으로 출범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여성활동연구소라는 존재를 알고 내가 느꼈던 반가움과 든든함은 역시 헛된 것이 아니었다. 아무쪼록 여성예술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더불어 여학생들의 정치적인 모임이 정식으로 출범하길 바란다.

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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