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돕기 <문학카페 명동> 6일 첫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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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과 문학의 만남이란 참신한 시도가 눈에 띄는 <문학카페 명동>. 사진은 6일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 한영애씨. 오른쪽 옆은 신경림 시인. <사진·민원기 기자>

문학과 대중가요가 의미있는 첫 만남을 가졌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가 외국인 노동자를 돕기 위해 <문학카페 명동> 행사를 지난 6일 시작한 것. 이 행사는 소설가 등 문학인과 대중가수를 패널로, 문학비평가를 사회자로 등장시켜 3인이 무대에서 작품과 노래, 얘기를 관객과 함께 하는 이색적인 행사다. 그동안 고급예술이 현장성, 대중성을 잃고 일반인들과 유리돼 온 것에 대한 반성에서 기획된 이번 행사는 문학인의 작품과 가수의 공연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예술간 장르를 허물고 대중성과 현장성을 함께 획득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특히 공연 수익금을 전액 외국인노동자 보호시설에 기탁하기로 함으로써 그 의미가 한층 빛나고 있다.

<문학카페> 행사는 우선 공연장소를 명동으로 선정함으로써 지난 날 예술인들의 집결지였던 명동을 관객들이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한 기발함이 돋보인다. 현기영, 박완서, 박범신, 황석영, 강은교 등의 문학인과 노·찾·사, 전인권, 정태춘, 권진원, 이은미, 크라잉넛 등 대중가수가 무대에 설 예정이다. 사회자는 평론가 위주로 선정됐다.

지난 9일 명동 밀리오레홀에서 첫 문을 연 행사는 전·후반 35분씩 각각 노래 두 곡과 작품낭독, 대화로 꾸며졌다. 이날의 초대손님은 신경림 시인과 가수 한영애씨. 사회는 소설가 김별아씨가 맡았다.

김씨는 인사말에서 “50∼60년대에 명동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가난했지만 낭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며 “전후 젊은 세대들이 방황한 곳이자 문인들의 만남이 이뤄지던 곳”이라고 회고했다. 신경림 시인은 “대중과 조명 앞에 서 보는 건 난생 처음이라 떨린다”면서도 “그동안 대중과 소통하지 못했던 닫힌 시, 폐쇄적인 시가 이번 기회를 통해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영애씨는 “노래 가사와 시가 다르지 않은 만큼 가사의 시화(詩化)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출연진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은 한영애씨가 특유의 제스처를 선사하며 대표곡 <여울목> <가을 문턱에서>를 부르며 누그러졌다. 문학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행사 취지에 맞게 노래 가사와 몸동작 전체가 하나의 시어를 보는 듯한 공연에 신경림 시인은 물론 관객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낭만 있던 옛 명동 되새기고

근로자 수출하던 한국의 옛 모습 돌아보기도

신경림, 박완서, 황석영 등 문학인

한영애, 노·찾·사, 이은미 등 대중가수와 함께

이번 공연은 시나 문학을 마냥 어렵게만 생각하고 배척하는 풍토를 바꿔보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한영애씨는 “평소 시를 접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분석부터 하게 되고 시를 시로써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신경림 시인은 “시는 사람의 각박한 삶을 여유와 풍요로 채워주기 때문에 시는 사상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단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의 문학관을 거듭 되뇌었다. 또 “요즘 시는 즐겁기는커녕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며 “민요적 정서 역시 자연스레 담으면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시 속에 내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시인은 신작 시집 『뿔』 중 <특급 열차를 타고 가다가> <떠도는 자의 노래> 등을 낭독했다.

출연진에게 명동은 각별한 곳이었다. 신 시인은 명동의 옛모습을 회고하며 “등단했다고 하면 으레 명동에서 배회하는 것을 불문율로 알던 때가 있었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탤런트 최불암씨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에 천상병 시인 등 문인들이 모이던 일, 취중에 서로의 예술관을 토론하다 멱살잡고 싸우던 일 등이 모두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대목에선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영애씨에게 명동은 음악 인생의 출발점이 된 곳이기도 했다.“고등학교 시절, 당시 유명한 음악감상실 <내쉬빌>에서 김민기씨 공연을 보기 위해 교복차림으로 출입하기도 했다”며 음악의 산실 역시 명동임을 회고했다. 최근 고은 시인이 “요즈음 문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탄한 것 역시 이번 행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연상케 한 대목이었다.

들뜬 분위기는 한 네팔 노동자의 수기 <외국 노동자도 사람인데>가 낭독되며 숙연해졌다. 15일짜리 관광비자로 입국, 도금업체에서 월 35만원에 일하고도 임금은커녕 사장에게 매질까지 당해 몸을 추스릴 수 없는 처지가 돼버린 그의 가슴아픈 사연에 관객들은 할말을 잃었다. 33만 외국인노동자 중 60%가 불법체류자라는 현실은 명동의 옛 모습을 돌아보는 것과 더불어 근로자를 수출하던 한국의 옛 모습도 돌아보게 했다.

한편 행사 직후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 소속 최의팔 목사가 불법 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 3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들의 현실을 들려주며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나선 러시아 출신의 무용수 타니아씨는 E6 비자로 세달 전 입국했지만 이태원 등지 유흥업소에서 강제 노동을 강요당하다 탈출한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문학카페> 행사는 도시의 옛모습 더듬기와 문학, 대중예술의 만남,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함께 유도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달 27일 시와 산문 낭송회 공연(무료)부터 11월 29일까지 매주 금요일 공연 예정. 전 공연이 KBS1 라디오 <김갑수의 문화읽기>로 녹화 방송된다. 참가비 2만원. 문의 02-313-1486.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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