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녀

~19-1.jpg

엄마와 딸, 이들 여성의 사이만큼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모성에 대한 과도한 신화가 어깨를 짓누르는 한국사회 안에서 엄마와 딸은 여성과 여성 이전에 ‘일방적으로 퍼주고 당연한 듯 받는’ 부모자식 관계로 상정되거나 ‘엄마처럼 안 살겠어요’라는 악에 바친 딸의 선언으로 엄마 세대와의 결별을 암시하는 식의 접근이 주류였다. 그러나 ‘카사블랑카’,‘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히로인 잉그리드 버그만의 마지막 영화이자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대표작 ‘가을소나타’를 각색한 연극 <가을소나타>가 보여주는 모녀 관계와 엄마의 캐릭터는 다소 새롭고 낯설다.

이 작품은 욕망하는 실체로서의 어머니를 그려내면서 부모자식간의 관계에도 여느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원초적인 갈등과 세밀한 감정 굴곡이 존재하며 권력과 애증, 그리고 편협한 오해가 난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첨예한 갈등관계를 어쩌면 가족, 부모 관계라는 굴레 속에 넣어 작위적인 완충 역할을 맡긴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귀띔한다.

선망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국제적 피아니스트 엄마에게 기대했던 사랑과 관심이 번번이 채워지지 않아 분노와 슬픔이 상처로 남아버린 에바,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해온 친구의 죽음으로 늙어버린 자신 혼자만 남겨졌다는 외로움을 딸에게 위로 받고자 찾아온 샤롯의 7년만의 재회.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 거리감은 모녀관계이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좁혀지거나 회복될 수 있는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동요하고 망설이면서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 지극히 ‘실제적인 것’이다. 오랜 공백을 뚫고 만난 두 여성은 그들의 모녀관계에 달콤한 설탕가루만을 얹어 서먹함을 애써 지우려 하지만 그들 깊숙이 자리잡은 상처의 기억은 마침내 터져 버린다.

늘 아름답고 완벽했던 여성이자 자신의 엄마인 샤롯에게 술에 취한 에바는 “난 엄마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한 조각도 없었어요”라고 분노하며 화려한 엄마를 보면서 자신이 견뎌야 했던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터뜨린다. 에바는 “엄마는 항상 자신만을 사랑했어요. 전 늘 엄마의 인색한 애정 표현에 의존해야 했죠”라고 절규하지만 샤롯은 “난 네가 무서웠어. 넌 늘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에바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난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어요”고 대답한다.

이 간극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틀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모녀의 관계를 보여준다. 엄마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샤롯은 엄마로서의 의무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신의 애정과 관심에 목말라 하는 딸의 눈빛이 두려워 괴롭게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에바는 여느 어머니처럼 자신을 품에 안고 키워내지 않은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갈등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며 샤롯은 “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수학자셨지. 너그럽고 인자한 분이지만 나나 오빠를 한번도 안아주신 적이 없었어. 난 사랑표현에 완벽하게 무지했단다”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할 줄 모른다거나 사랑의 방법은 부모에게 배운다는 다소 진부한 암시를 넌지시 건네며 얼렁뚱땅 넘어가기에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구체적 곡선들은 간단치 않다. 샤롯은 ‘엄마답지 못한’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채 자신의 부모에게 원인을 찾는다. 사회 속에서 자신과 같은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배웠으므로, 남자의 호의를 딸에게 빼앗기는 것조차 질투하는 욕망의 존재인 엄마는 허락되지 않으므로 샤롯은 자신을 변명할, 그리고 설명할 언어들을 찾지 못하고 당황한다.

그런 샤롯에게 결국 에바는 “진실과 거짓만 있을 뿐, 용서는 없어요. 엄마는 유죄예요”라고 선언해버린다. 반면 지체부자유자인 둘째 딸 헬레나는 정작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요양원에 보냈던 엄마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니인 에바의 분노 어린 질책으로 슬퍼하는 엄마를 끌어안는다. ‘엄마가 내 사랑을 갈구할 때 헬레나는 이미 엄마 옆에 있었다’는 에바의 독백처럼 헬레나와 샤롯의 관계는 에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샤롯은 결국 매니저에게 전화해 급한 스케줄이 있다는 구실로 자신을 빼내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머물기로 한 날을 채우지 못하고 두 딸을 뒤로한 채 황급히 떠나버리는 샤롯, 남겨진 에바는 ‘너무 늦은 걸까요’라고 쓸쓸이 독백한다.

이 연극은 ‘엄마의 욕망은 거세돼야만 하는가, 엄마는 늘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의 애정을 충족시켜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욕망하고 충돌하는 모녀관계에 대한 고찰을 섣부른 도식 구도로 결론 맺지 않는다. 서로 다른 소나타를 연주하는 두 여성의 사랑과 갈등, 그 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그것이 설령 모녀관계일지라도.

19일까지. 제일화재세실극장 02)3442-5141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