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우리 사회에는 영웅이 없다고 한다. 조금 잘나간다 싶으면 끌어내리고 난도질을 해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는 여성에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여성이 여성의 적’이라는 말에 많은 여성이 공감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여성의 평가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그러나 모처럼 여성계가 한 목소리로 장상 총리서리에 대한 여론몰이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현재 언론에서 진행되는 장 총리에 대한 검증과정은 필요이상 감정적이고 부풀리기로 일관되고 있다.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인데 상황을 악화시키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DJ가 하는 일은 뭐든지 미운 보수언론의 편향된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장총리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범위로 제한돼야 하며 특히 각료에 대한 인사는 국회의 동의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언론의 검증은 목적이 뭔지 헷갈리게 만든다.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목적은 대상자가 공직수행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공직자는 직무수행을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가 없다. 따라서 검증과정은 결정적인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하며,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면 인준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는 상식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는 사안마저도 큰 문제인양 부풀려 공직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만다. 야당과 언론은 자신의 임무를 이렇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인준은 해줘야 하니까 우리의 소임은 가능한 한 상처를 많이 남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면 살아남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살아 남은 공직자도 부하직원을 통솔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장총리의 발언에 일부 실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문제를 사안별로 따져보면 이렇게 마녀사냥을 할 일은 아니다. 이중국적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국민정서법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정서가 앞으로 우리가 세계화시대를 헤쳐나가는데 장애가 된다면 언론이나 여론선도자들이 나서서 국민을 설득해야지 이에 편승하는 것은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호주에서는 외국인 장관 모집광고를 낼뿐만 아니라 케네디를 비롯해서 미국의 대통령은 대부분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부시행정부의 고위층에 한국인들이 임명되자 우리는 얼마나 기뻐하고 이를 환영했었나. 아일랜드는 거주자보다 이민자가 몇 십 배 더 많은 나라다. 해외교민이 최근 아일랜드 기적의 밑거름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나라의 국력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국민의 수와 질이다. 한국민이 선진국으로 많이 진출해서 그 곳의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이 좁은 국토에서 바글거리는 것보다 더 큰 애국이다.

다만 군 입대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외국시민권을 택했다가 다시 한국에 귀화할 경우 이에 해당하는 불이익을 주면 된다. 어차피 외국시민으로 그곳에 뼈를 묻을 사람이라면 굳이 국방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미국 시민권은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지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중국적자도 국방의 의무를 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것은 관계부처가 한번 고려해 볼만하다. 하지만 장총리의 아들은 병역기피를 위해 미국시민권을 택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비난할 합리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등록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영주권과 시민권은 엄연히 다르다. 장 총리 아들이 한국국민이 아니라 할지라도 거주주민으로서 의료보험이나 교육의 혜택은 누릴 수도 있다. 다만 외국인처럼 매년 비자를 갱신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는 행정기관의 실수다.

학력 허위기재와 부동산투기 문제에 이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장 총리의 저서나 학장시절 교무수첩 등 장 총리의 손길이 닿은 곳에는 학력이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다. 장 총리가 졸업한 프린스턴신학대학은 미국에서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허위기재할 이유가 없다. 다만 직원들이 기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을 마치 본인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처럼 부풀리는 기자의 자질과 언론의 도덕성에 분노할 따름이다.

부동산 투기는 시세차익을 남기고 땅을 되팔았을 때나 주민등록을 허위로 이전해서 농지를 매입하는 등의 행위를 말한다. 설령 재산을 부동산에 투자했다한들 자본주의 사회의 공직자로서 뭐가 문제가 되는가. 하지만 장 총리의 경우는 복지재단의 설립을 추진했던 기록도 있다.

인사청문회가 정착되는 과도기 과정에서 시행착오의 희생물이 장 총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여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을 안겨주어서도 안 된다. 프랑스의 크레송 총리가 적대적인 언론의 입방아로 일년도 안돼 중도하차하면서 남긴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치를 하려는 여성은 우선 언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