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내년 총회에서 위안부 의제 채택키로

일본 군위안부 문제가 내년에 열리는 제91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의 정식 의제로 채택될 전망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1995년부터 일본 군위안부가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강제노동을 금하는 ILO의 제29조 협약에 대한 위반임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하지만 일본측의 거센 반발로 번번이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하다가 올해 비로소 노동자그룹 회의에서 잠정 의제로 채택됐다. 그러나 결국 이번에도 총회 본회의의 정식 의제로는 채택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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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총회가 열리는 회의장 앞에서 한국측 노동자대표 참가자들이 위안부문제를 총회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다만 노·사·정 3자 대표들이 참석한 회의에서“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일본의 협약 제29조 위반 사례에 대해 여러 가지 이견이 있었지만 올해는 제98조(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위반 사례를 다루고 내년에는 제29조 위반 사례를 다루기로 노동자그룹과 사용자그룹이 공동선언(joint declaration)하기로 했다”고 약속받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의 전례에 비춰볼 때 이 전망을 뒷받침하기 위한 한국 정부와 사용자 그룹의 적극적 협력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노·사·정이 단결해 반대 로비를 벌이는 일본측에 의해 다시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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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NGO들이 일본정부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며 동경 거리에서 시위하고 있다. <사진제공·정대협>

그렇다 해도 군위안부 문제가 일단 ILO 총회 본회의에 상정되기만 하면 그 의미와 파급효과는 무척이나 크다. ILO는 유엔의 다른 기구와 달리 총회 의결절차를 통해 회원국에 구속력과 강제력을 가진 권고채택 및 조사단 구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본정부에 상당한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ILO총회에는 175개 회원국의 노동장관을 비롯한 정부인사와 노동자·사용자 대표 등 3천여명이 참석하므로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지금까지 여러 국제기구에서 위안부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2000년도에는 세계적인 국제법 권위자들과 함께 국제전범법정을 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 나온 권고안들은 도덕적 구속력을 가질 뿐 일본 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나 ILO의 경우 일본도 회원국으로서 1932년에 이미 제29조 강제노동협약에 비준했기 때문에 조약을 준수할 의무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29조 협약을 위반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즉, 일본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피해자 배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대협은 군위안부 문제를 유엔을 통해 세계에 알리는 한편 95년부터 ILO에 꾸준히 군위안부가 협약 29조에 위배된다는 진정서를 제출해온 것이다. 또한 일본측은 막강한 로비력을 발휘하며 안건 상정을 막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ILO의 기준적용위원회 노동자그룹은 일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중국, 이탈리아 등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이 문제를 만장일치로 총회 의제에 포함하기로 결정했었다.

노동자그룹이 채택한 의제는 거의 원안대로 총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당시 대부분의 언론들도 “일본 군대위안부 문제가 ILO총회 산하 기준적용위원회의 노동자그룹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노·사·정 대표단의 강력한 로비와 압력으로 인해 기준적용위원회 사용자회의는 “노동자회의가 제출한 군대위안부 문제를 논의했으나 노동권과 인권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 일본 군대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번복 발표했고 결국 군대위안부 문제는 의제에서 삭제됐다.

내년 ILO총회에서 ‘위안부 의제 채택’이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측 노·사·정 대표단간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지만 일본에 비해 우리 대표단의 협조관계는 상당히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ILO 총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언급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이번 총회에서도 정부는 의제 채택을 위한 아무런 발언도 준비하지 않았다. 외무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내년 ILO 총회를 위해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관계자는 “정부가 준비할게 뭐가 있나. 그건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일본정부의 로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전혀 없다.”고만 대답했다.

우리측 사용자 대표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측에서도 위안부문제가 인권문제일 뿐 아니라 노동문제라는 인식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측의 강력한 반대에 맞서 ILO의 다른 회원국 대표들을 설득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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