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해 열린 ‘우리’를 위한 점검②

“외국인이 지나간다” 하면 순간적으로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가?

대학의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수강생 중 80%가 ‘백인 남자 어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대부분 아시아인들이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 1∼3월 동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 120만여명 중에서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73.9%나 된다. 반면 백인 남자에 해당하는 이는 전체 여행자의 9%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외국인’하면 곧 백인 남자만 떠올리는 것일까?

지난 해 (사)또하나의 문화에서 발표한 ‘글로벌 시민의식 설문조사’(행정자치부 후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고 싶은 외국인의 출신 지역은 아프리카(31.3%), 중동(20.2%), 서남아시아(16.6%), 일본(11.0%), 중국(6.7%), 동남아시아(4.9%), 중남미지역(4.3%), 북미(3.7%), 유럽(0.6%) 순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과 북미인으로 보이는 백인들에 대해서는 익숙한 느낌을 갖고 경계심이나 선입견이 없지만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들이나 특정 종교 국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식과 태도를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설문에 참가한 시민들은 특정 지역 사람들을 회피하고 싶은 이유로 “낯설기 때문”(41%)이라는 답을 가장 많이 했다. 이 응답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 출신의 외국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적지만 낯선 지역 출신의 외국인일수록 꺼리고 차별적으로 대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이런 태도를 갖게 된 데는 특정 국가의 문화만을 선별적으로 보여주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 다른 문화를 직접 경험한 적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특정 이미지들은 그 국가에 대한 문화적 선입관으로 고정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드컵을 맞아 정부는 ‘특별홍보단’을 구성하여 월드컵 본선진출 국가들을 순회하며 한국 관광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다. 88올림픽 이후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국가들에서는 ‘코리아’ 하면 전쟁 직후의 극심한 가난이나 판문점으로 상징되는 삼엄한 분단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는 그들이 접한 한국에 관한 정보나 이미지가 그런 것들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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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마이너>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일부 국가들에 대해 잘못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거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다. 타문화에 대한 이런 잘못된 선입관은 곧바로 인종차별의 형태로 나타난다(본지 675호 보도).

최근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에서조차 카메라의 시선이나 진행자들의 코멘트는 차별을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사는 검은 피부를 가진 원주민 여성들의 노출된 가슴은 그대로 방영하지만 백인누드촌의 여성들의 가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식으로 타문화의 차이들을 ‘미개’와 ‘문명’ 혹은 ‘후진문화’와 ‘선진문화’라는 이분법으로 나눠 구별하고 위계를 따져 차별한다.

이제 더 이상은 이런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태도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 왔다. 정부는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 수가 35만∼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물론 백인 남자 어른도 있겠지만 여자와 아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러 인종과 종족의 사람들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염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그에 걸맞는 문화적 감수성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감수성이란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 차별을 반성하며 글로벌 시민답게 낯선 문화와 인종에 대한 이해의 감수성을 내면화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타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 이해력을 증진시키는 것과 아울러 익숙한 우리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다양하게 제공돼야 한다. 즉, 우리의 문화를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성찰하는 동시에 타문화를 그 나름의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자세를 키우는 것이다. 얼마전 프랑스 여배우의 항의로 촉발된 ‘개고기’논쟁은 문화 상대주의와 타문화에 대한 균형있는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스스로 주장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이제 월드컵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도로를 보수하고 화장실을 바꾸고 숙박시설을 확충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내면을 업그레이드할 차례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다양한 외국인들은 우리가 타문화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로 편견을 갖고 있는지 공식·비공식적으로 검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움주신 분=김찬호/연세대 사회학과 강사, 서울시 대안교육지원센터 부센터장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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