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오자 우선 걱정부터 앞섰다. TV를 통해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줌마

들이 계를 하다 계주가 도망가 많은 손해를 입는 모습을 종종 봐 왔기 때문이리라.

계라고는 해도 뭐 그리 대단할 것도 거창할 것도 없었다. 적은 인원으로 적은 돈을 모아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타게 해주자는 얘기였다.

우린 여섯 명이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 여섯 명이 장사한 돈을 하루에 만원씩만 모아도 일주일이면 42만원. 여섯 명이 돌아가면서 타게 되는데 6주에 한번은 42만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장사를 하는 덕에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어쨌든 수중에 돈은 항상 들어오는 편이요, 또 티

끌 모아 태산이라고 적은 돈도 하루하루 모으면 금방 큰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린 그 돈의 용도를 엄격하게 정했다. 일주일에 한번 맛있는 요리도 사먹고 술도 마시러 가고 노래방에 가서 소리소리 지르며 노래도 부르면서 장사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쓰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그야말로 ‘비자금’이 돼서 우리를 위해서 꼭 우리 개인을 위해서만 쓰기로 했다.

시댁, 남편,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만, 순전히 내 책, 내 옷, 내 신발 등등 내가 필요한 물건만 사기로 정해 놓았다.

액수래야 그리 크지 않은 만원은 없어도 살고 있어도 살지만 정작 하루 꼬박꼬박 만원씩 내기란 참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정해놓은 약속이고 또 기분 좋게 챙겨서 내자, 나중에 내 차례가 오면 얼마나 좋았던지 42만원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가 있었다.

매일매일 내는 만원은 그날의 과소비를 줄이는 데도 한몫 했고 적금을 매일 한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든든하고 뿌듯한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차차 우리끼리 한 계에 대해 소문이 퍼지자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모양이다.

한 사람 두 사람 같이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우린 그때마다 의논을 해서 사람들을 받아 들였다. 나중엔 10명까지 늘어나 두 달에 한번 타는 계로 바뀌는 대신 금액은 커졌다.

사실 장사를 하면서 돈이 항상 조금씩 있는 대신 과소비를 하기 십상이다. 항상 주변에 여

러 가지 물건이나 액세서리 점포가 있으니 별 필요 없어도 그냥 쉽게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계를 시작하고는 그런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장 하루에 만원씩 꼬박꼬박 돈을 내야 했으니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안됐다. 또 적은 돈이지만 내지 않고 밀린다면 나중에 큰돈이 돼 그날그날 장사한 부분에서 빼놓는 것이 가장 부담이 적었다.

계주를 맡은 언니가 어찌나 지독하고 알뜰살뜰 했는지 우린 옴짝달싹 못하고 매일매일 입이

댓발은 나와 만원씩을 뜯겨야 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돈을 타는 날이면 어찌나 날아갈 기분이었는지 그 기분 정말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내가 계를 타는 날 이쁜 옷도 사 입고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도 잔뜩 샀다. 그리고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딸아이를 위해서 썼던 것.

어쩌면 나를 위해서만 쓰자던 그 마음가짐엔 딸아이의 물건을 사는 것, 딸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이 가장 나를 위해서 쓰는 일이 아닌가.

웃음이 나온다. 계를 타면서 가장 먼저 ‘우리 딸을 위해서 뭘 해줄까’가 생각났으니 말이다.

<박진미/세상모든 부부가 평등부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줌마 장사꾼 >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