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빛을 내는 배우 나자명
스스로 빛을 내는 배우 나자명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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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우는 처음이다. 편집국에 찾아와 약 50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와 포트폴리오를 놓고

갔다. 한국과 일본을 망라한 각종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약력, 사진 등등. 확실한 자기 PR이 맘에 들었다. 기자란 본디 호기심 많은 종족들 아니던가.





집에서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사한 지 얼마 안돼 짐이 쌓여있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짐을 어떻게 쌓아 놓았을지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 배우를 어찌 안볼 수 있을까.



인터뷰 당일 그의 집 근처에서 나자명을 기다린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여기요!” 하고 부른다. 설마 나일까. 또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얼굴, 나자명이었다. 그는 그 넓은 혜화동 로터리 횡단보도에서 손을 좌우로 흔들며 그렇게 기자를 부르고 있었다.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는다. 그러더니 “뭐 먹고 싶은 거 있느냐”며 시장으로 데려간다. 나자명과의 인터뷰 첫 장소는 ‘농·수산물 공판장’이 됐다.



어떻게 보도자료를 들고 직접 신문사를 찾을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기획사도 매니저도 없는 ‘무명배우’가 발로 뛰어야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거쳐서 기자를 만나기도 싫구요. 매니저가 없어도 자기관리는 잘 할 수 있다는 거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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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명이 고등학교 때부터 그린 그림과 써온 글. 나자명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작곡을 하는 배우다.



그렇다고 정말 무명배우는 아니다. 한국보다 외국에서 활동할 기회가 많았을 뿐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열심히 하다보니 운이 따랐다.” 한 공연을 마치고 나면 그 공연을 본 외국의 연출자에게서 꼭 연락을 받았다.



지난 3월 19일부터 24일까지 일본에서 공연했던 <레즈 시스터즈(The Rez. Sisters, 보호구역의 자매들)>도 그런 경우다. 게다가 이번엔 연출자이자 저작권자인 톰슨 하이웨이로부터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공연권과 번역권을 건네받았다. <레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여인 7명의 각기 다른 삶과 그들의 자매애를 그린 연극. “사실 처음 대본을 보자마자 반한 연극이예요. 일본의 기라성같은 배우들 틈에서 제일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됐지요.”



그가 맡은 역할은 강간 등 핍박의 상처를 지녔으면서도 부족의 신 나나부슈를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맑고 밝은 영혼을 지닌 인디언 소녀. 애정이 있는 작품인 만큼 직접 번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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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自)에 밝을 명(明), 직접 지은 예명의 뜻과 걸맞게 스스로 빛을 내는 배우다.





그는 스스로 운을 만들어 나가는 배우다. 직접 만든 예명도 그의 이런 성품과 일맥상통한다. ‘나자명’은 어릴 때 집에서 부르던 이름. 어릴 때 이름을 되찾아 예명으로 쓰면서 한자도 바꿨다. 스스로 자(自)에 밝을 명(明). 스스로 빛을 낸다는 뜻이다. “아, 이름요? 누가 도와 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또 ‘자명’이라는 단어엔 ‘당연한, 바뀌지 않는’이란 뜻이 있잖아요? 그건 자연과 같다는 뜻이라서 또 좋았구요.”



하늘이 내다보이는 나자명의 방 한켠엔 이젤이 놓여 있었다. 연극배우와 그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림 얘길 물었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크고작은 스크랩북 세 개를 주섬주섬 들고 나온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냥 제 마음대로요.” 구상도 비구상도 아닌, 펜으로도 물감으로도 크레파스로도 그린 그림들. 자그마한 삽화에서부터 4절지 크기의 그림까지 약 2백여점이나 됐다. 갈수록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지도 궁금해졌다. 그랬더니 또 무언가를 찾아선 들고 나온다. “고등학교 때 인간에 대해 고민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 하루에 두세 개씩의 연극을 보러 다녔죠. 그때부터 적은 노트들이에요.” 색바랜 책장마다 그날 본 연극들, 그리고 그때의 느낌과 고민, 시와 수필들이 빼곡이 적혀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지 말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쓴 건데 곡도 떠올라서 지어놓았다는 것이다. “작곡을 배운 적은 없으니 악보는 머리 속에 있는 셈”이라며 웃는다. 언젠가는 글과 삽화들을 모아 책도 내고 음반도 낼 생각이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라면 먹고 가라”며 붙잡는 순간까지 나자명은 호기심을 샘솟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일까. “한 배역을 맡을 때마다 또 한 사람의 인생을 보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할이든 그 인생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지요. 연극은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에 들어가 사랑하게 되는 가장 멋진 방법이고 그것은 배우의 특권이지요.” 나자명은 배우로서 특권을 가장 자연스럽게 누리고 살 것이 자명한 천상 배우다.



김지은 기자 lun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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