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출신 흑인들 “욕하는 한국인”

‘아초·쿠마’대신 ‘조셉·리차드’로 소개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 곁에 안 앉아요. 서서 가더라도 우리 옆자리엔 가방만 올려놓지 절대 앉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과는 싸우면 안돼요. 자기 나라 사람 편만 들거든요.” “한국인들은 흑인을 너무 싫어해요. 정말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에요.”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이도 중요하지 않나 봐요. 한 번은 열아홉 살 청년이 공장에서 나이 오십이 다된 우리 동료를 때렸어요.” “욕을 입에 달고 다녀요. 욕을 노래하듯이 해요.”

무자비한 인종차별로 악명을 날렸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노예제도가 공공연히 존재했던 백여년 전 미국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예의범절과 유교적 가치관을 내세우며 서양에 비해 도덕적 우월감을 자랑하는 한국인,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이 소수민족과 유색인종이기에 당하는 멸시와 차별에 늘 분노하는 한국인들을 향한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목소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와 냉전의 폐해를 극복해 나간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인권이나 세계평화의 증진과 같은 영역에서 인류역사에 기여할 수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을까? 한동안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한국인들이 자긍심과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한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변화된 한국의 국가위상과 세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인 듯 하다.

어렵고 힘든 시절, 방어적 차원에서 한국인의 문화적 우수성과 한국 중심의 사고를 강조해온 민족주의가 다른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필요성을 계몽하지 못한 결과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서구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열등감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제3세계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이 더해진 기형적인 자민족 중심주의가 한국인들을 서구의 백인 앞에서는 여전히 약하고 가난한 국가의 검은 피부색 사람들에게는 오만하게 만든 듯하다.

가나에서 영어교사를 하다 한국에 일하러 온 40대 후반의 코피(Kofi)는 단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고픔을 피해 온 야만인 대우를 받아야 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데레미(Aderemi)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와 탈식민주의 문학작품과 이론으로 유명한 치누아 아체베가 나이지리아인임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가 만난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들을 알지 못했다. 피카소의 그림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지만 피카소의 작품 특징중의 하나인 비대칭적 인물구성이 가봉의 팡(Fang) 사람들이 만든 목각가면에서 영감을 받은 결과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모른다. 한국인들에게 가봉은 그 나라 대통령의 이름을 딴 ‘봉고’ 차량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제 한국에 와 있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은 더 이상 한국인들의 차별과 모욕에 대꾸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인들의 기형적 가치관을 알아챘기에 이태원 같은 곳에서 이제 자신들을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라 소개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이상 ‘아초, 코피, 쿠마’가 아니라 ‘조셉, 리차드, 또는 케네디’인 미국에서 온 흑인들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미개인이라고 멸시하던 한국인들이 미국인이라면 어느덧 자신들을 다르게 대우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건수(강원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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