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우림, 본공연 후 ‘찾아가는 공연’ 전국투어 시작

1992년 10월 28일 오후 3시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번지 속칭 ‘기지촌’ 안의 한 셋방. 이곳에서 술집종업원 윤금이씨의 시체가 집주인 김씨에 의해 발견됐다. 직접 사인은 ‘전두부 열창에 의한 실혈’. 머리는 피로 범벅돼 있었고 그 옆엔 깨진 환타병이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잔혹한 살인행위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우산대가 그의 항문을 통해 직장까지 약 26센티미터나 들어가 있었다. 음부에는 콜라병이, 입에는 성냥개비가 꽂혀있었고 온 방안은 흰 세제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범인은 주한 미군 제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 이 사건은 미군에 의한 성범죄 중 가장 잔혹한 범죄로 남게됐다. 그러나 더 불행한 사실은 이 이후로도 수많은 미군범죄가 그치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을 당시 윤씨의 나이 스물여섯.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한을 안고 떠난 그가 다시 살아난다. 지난 해 3월 윤금이씨를 추모하는 최초의 창작극 <금이야 사랑해>를 선보인 극단 우림이 올해도 그 맥을 잇는다. 올해는 윤씨 10주기가 되는 해여서 더욱 뜻깊다.

극단 우림의 이진숙 대표는 “첫무대를 올리기 전에도 항상 윤금이씨에 대한 빚이 있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윤씨 추모극을 올리고 싶어도 “그렇지 않아도 춥고 배고픈” 연극판에서 작은 극단이 수익도 나지 않는 일을 무작정 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은 거기서 비롯했다. “우리 아니면 누가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주위에선 “망한다”며 모두들 말렸다. 그러나 9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현실은 그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했다. 의외로 연극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순수한 용기와 주위의 우려로 시작된 <금이야 사랑해>는 주연배우 오디션에만 60여명이 몰렸다. 소규모 극단의 오디션으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본 공연 후엔 경희대, 조선대, 경원대, 한국외대 등 전국 7개 대학에서 초청이 잇달았다. 그런 관심이 올해 <금이야 사랑해 2>를 준비하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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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층 현실적인 연극이 될 듯하다. 작년엔 윤씨와 윤씨 사건을 대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극을 만든 반면 올해는 ‘기둥서방’ 창수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했다. 기지촌의 현실과 그 안의 여성들, 그리고 윤씨의 심리를 좀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다.

고 윤금이 10주기 추모극 <금이야 사랑해 2>는 오는 5월 3일부터 5일까지 소극장 마루에서 선보인다. 올해도 본 공연 후 초청하는 단체와 대학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예정이다. 이진숙 대표는 “누구보다 대학생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도 10년 전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게다가 제2, 제3의 윤금이가 생기고 있는 현실에서 윤씨 사건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5월 3일 오후 7시 30분, 4일·5일 오후 4시, 7시/소극장 마루(명동성당 근처 YWCA 건물)/(02)338-0818

김지은 기자 lun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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