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정치 참여율 두 자리 수를 기대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되는 당내 경선에서 여성들이 계속 패하고 있다. 여성계는 각 정당이 여성할당제를 약속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정당에서는 할만큼 하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쏟아낸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었던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은 이 답답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할 말이 많다고 했다. 4월 9일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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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그동안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김 의원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효과가 없군요. 좌절감마저 느낍니다. 여성들에게도 불만이 있고, 아휴, 남성들에게는 적대감까지 생긴다니까요.(웃음)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구나하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주요 정당에서 여성 공천 30%를 당헌·당규에 수록했는데 이건 큰 수확이예요. 국회 정당법에서도 여성 공천 30%를 지키는 정당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준다고 명시한 것은 정말 장족의 발전입니다.”

- 그렇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남성들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보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 한나라당만 해도 여성에 관한 내용이 당헌 당규 어디 한군데 제대로 박혀 있지 않았으나 이번 기회에 다 만들어졌어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당직의 30%는 여성에게 할당한다든지 대의원의 30% 이상은 여성으로 한다든지 하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거든요. 앞으로 여성들이 정당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기틀이 마련됐으니까 머지않아 그 벽도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 여성 공천 할당제를 두고 또다른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됐었죠.

“나참, 아흔아홉섬 가진 자가 마저 한섬까지 갖겠다고 하는 형국입니다. 남성들이 아주 이기적이예요. 남성들은 이미 정치분야에서 엄청난 기득권을 쥐고 있지 않습니까? 남성들이 양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가야죠.

혹자는 정치인으로 나서겠다는 여성이 어떻게 30%나 되느냐며 목청을 높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무슨 소리냐 50%까지 하려다가 쇼크 받을까봐 30% 한 것이라고요.(웃음)”

- 상향식 공천이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상향식 공천제도 자체를 반대할 명분은 없어요. 권력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데서 발생하는 겁니다. 선거인단을 누가 선정합니까. 각 지구당에서는 위원장들 눈빛만 바라보고 있어요. 한 마디로 형식만 상향식 민주주의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그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죠.”

- 한나라당의 경우 몇몇 지구당위원장은 경선없이 여성을 공천하기도 했는데요.

“그 분들은 정말 대단한 결정을 하신 겁니다.

사실 중앙당 차원에서 지역별로 여성 공천을 위해 출마를 희망하는 여성들의 명단을 작성해서 지구당에 내려보낸 일이 있는데 대부분 지구당위원장들은 ‘경선하게 될텐데 망신당하지 말고 사퇴하라’ 뭐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지구당을 위해 한 일도 없으면서 괜히 나서지 말라고요. 그러다보니 올초 100여 명까지 확보한 출마 희망자 명단이 50명으로 줄더니만 최종적으로 출마의지를 표명한 여성들이 30명 남짓 될까요? 매일매일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꼭 출마하라고 권했는데도 역부족이었어요.

경선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하면요, 서울지역의 한 후보는 일반 유권자들 설문조사를 하면 인기 1위인데 정작 경선에서 대의원들이 안 찍어주더군요.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면 국회의원 후보로라도 점찍어 둘 수 있을 정도 아닙니까. 대의원들이 그 여성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저 지역에서 오랫동안 얼굴 익혀온 인연으로 남성을 뽑았어요.

중앙당에서 능력있는 여성 후보의 경우 경선없이 공천을 확정해달라고 특별지침을 수차례 지구당에 내려 보냈는데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참 답답하더군요. 여성이 현재와 같은 구도로는 경선에서 당선될 확률이 정말 낮거든요. 그나마 몇몇 지구당위원장은 경선없이 여성 공천을 확정했는데 여성의 힘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여성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선이라는 정치적 풍랑을 만나

무참히 떠내려 갔지만 여성 공천 할당제가 만들어진 이상 4년 후에는 지금과는 현저하게 달라진 선거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남성 의원들이 가장 미워하는 여성 정치인이라고 들었습니다.

“하하하. 왜 안 그렇겠어요. 맨날 전화해서 여성 후보 공천하라고 쪼아대니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당 당원 중 68%가 여자들입니다. 정당 정치현장을 보면 여자들이 주역인데 가정주부가 남편 도와주듯이 정당에서도 여자들이 궂은 일 마다않고 하고는 정작 권력은 남자들만 갖고 있어요.

남성들에게 가버린 권력이 여성을 대변해 주나요? 우리 어머니도 여자고 마누라도 여자고 딸은 둘이고 맨날 이 정도에서 발전이 없어요. 여성들의 문제가 뭔지 구체적으로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나서야지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남자 동료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 여성들의 준비도 지금보다는 더 철저해야 하지 않나요.

“스웨덴 국회의장이 여성인데 이 분 하는 말이 스웨덴에서도 여성 의원의 비율 42.7%정도를 만드는데 20∼30년 정도 걸렸답니다. 70년대까지도 6%대에 머물던 여성 의원 비율이 어느 한 성이 60%를 넘지 못한다는 법을 만들고 할당제를 도입한 후 그런 수치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던 말이죠.

우리도 이제 할당제를 법으로 못박아 놨으니 여성들도 이제부터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여대생들은 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분들은 아무래도 체계적인 공부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치현장이 싫다면 정치학자로라도 여성들을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어지간한 곳은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여성의 능력과 자질이 사장된 곳이 바로 정치권이예요. 여성들이 사회운동하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정치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정치인이 좋은 일자리예요. 다른 곳에 한눈 팔지 말고 정치마당으로 뛰어 드세요.”

- 정치일선에 뛰어드신 후 벌써 3선의원이신데 남다른 소회가 있을 듯합니다.

“유학 다녀와서 보니 민정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찾고 있더군요. 사실 어렸을 때 국회의원은 생각도 못한 것이었거든요. 나와는 동떨어진 굉장히 어마어마한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남편이 은근히 압력을 넣더라구요. 국회에 들어가서 일하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설득하는 바람에 결국 1988년에 입후보하게 됐죠.

근데 말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또 열심히 했거든요. 중학교도 남녀공학 다녔는데 전교 1등 했죠, 전주여고에서도 1등을 했단 말입니다. 대학에서도, 미국 유학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남한테 지지는 않았거든요. 전 열등감같은 거 느끼지 않고 살았어요. 항상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국회의원 하겠다고 입후보하니까 아 이거 참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싶더군요. 여성에 대한 편견은 왜 그리 심하고 또 남성들끼리 똘똘 뭉친 벽은 왜 그리 두텁든지요. 정치가 정말 더럽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이렇게 부패한 정치를 내가 깨끗하게 해야겠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면 여성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해야 하겠구나 싶어 1989년에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를 개소하게 됐죠.

제가 정당에 들어온 지 22년입니다. 평당원부터 시작해서 이 자리까지 왔으니 정치현장의 행태에 대해 잘 압니다. 어디가 구린지, 여성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다 알거든요. 남성들은 절대로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커서 올라가려고 하면 밟아 버리기나 하죠.”

- 정치에 나서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절대 중간에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세요. 실망했다고 해서 그냥 집으로 숨어 들어가지도 마세요. 우리 한국 정치 풍토에서 여성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보입니다. 3번 나가서 내리 떨어져도 또 출마하세요.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유권자들이 표를 줍니다. 정치 생활은 절대로 단기간에 성패가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화가 나서 속이 상해서 정치 생활 접자고 했으면 저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 최고위원에 입후보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라 설 수 있게 됐고 3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지 않았습니까.”

정치야말로 여성들이 개척해볼만한 무대이며 모든 여성의 권익이나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김 의원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듯 여성들이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정치권에 들어와야 한다고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차례 강조했다.

-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데 저는 이러한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키는데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 것도 큰 이유입니다.

최고위원 출마 희망자들을 보니 꼭 도지사 뽑는 것 같지 않습니까.(웃음) 각 지역에서 한 사람씩 다 나오고 있어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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