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등교를 할 때 항상 지하철을 이용했다.

학교가 워낙 먼 탓도 있겠지만 지하철은 깨끗하고 난폭운전, 교통혼잡이 없어 고등학교 때부터 지하철을 즐겨 탔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는 것이 일상이 되고 나니 지하철 타기가 택시 타기보다 더 무서워졌다. 그 이유는 지하철 내에서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억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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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부산 지하철은 공식적으로 노약자·장애인 좌석을 정해놓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노약자·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합시다”라고 표기된 조그만 포스터에서 좀 더 눈에 잘 띄게 의자에 글자를 새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노약자·장애인만의 좌석인지 몰랐다.

아∼ 나의 무지함이여. 어느 99년 여름이었다. 그날은 너무 더웠고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운이 없게도 노약자·장애인석만 비어있어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졸았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심하게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닌가? 잠에 취해있던 나는 종점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손길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 앞에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했고 아직 내리려면 한참 멀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에게 “여기는 내 자리다. 너 같은 게 왜 앉아 있냐?”라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했다. 내가 눈뜨고 사람 빤히 쳐다보면서 안 일어난 것도 아니고, 나이 든 아저씨라고 해도 나보다 약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황당해서 “왜 여기가 아저씨 자리죠?”라고 되물었더니 내가 입 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삿대질을 해가며 인간이 덜되었다, 썩 꺼지라며 욕을 해댔다. 게다가 거기에 있었던 어른(솔직히 나이만 어른이지 생각은 어른이 아닌 것 같았다)들 모두 싸가지 없는 년이라며 어디서 어른한테 꼬박꼬박 말대꾸 하냐고 그러는 거였다.

지하철 안에서 그런 망신을 당하고 나서 나는 집까지 오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야했다.

태어나서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 욕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잠깐 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지하철을 타다보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꼭 여성 아니면 어린 남학생이다. 특히 여성일 경우 내릴 때까지 욕을 하거나 따지면 싸가지가 없다고 난리다.

노약자석은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애매하다. 어디까지가 노약자인지도 불분명하지 않은가? 진짜 노약자들은 오히려 별말도 안 한다. 지하철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사람 보면 별로 약하게 생기지도 않고 나이도 별로 안 들어 보이는 사람이다. 노약자와 장애인에게 자리 비켜주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 자리이니 비키라는 말을 듣고 흔쾌히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우리나라 어른들의 안하무인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 나이가 젊고 많음을 떠나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공짜로 대접받으려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나이는 뭘 잘해서 주는 상이 아니다. 그냥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먹게 되는 것이 나이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나이주의’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뭔가 납득할 만한 구석이 있어야 이해를 하고 넘어갈 것 아닌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나이주의는 어떻게 깨뜨려야 할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너무 불편하다. 나도 그렇게 큰소리 치려면 빨리 나이를 먹어야 할텐데. 나이 먹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만으로 자랑이 아니에요! 어린 여자들도 좀 살자구요!!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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