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진실, 그 모호함에 던지는 질문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계 감독 멜리사 규정 리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그곳에서 영화학교 졸업작품을 겸해 한국계 영화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5살 때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났던 이규정 감독은 항상 자신을 아웃사이
더로 느껴왔다.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정체성 위기를 어떻게 겪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석달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만난 한국계 미국인들은 이규정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겪는 윤리문제에 관한 고민들을 들려주었다. 그러던 중 이규정 감독은 한 영화제에서 한국계 미국인 리차드를 만나 사귀게 되고, 일주일 뒤엔 리차드에게 소개받은 일본계 남성인 마크와 또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크와 리차드와 데이트하기 전에는 백인 남자들만 사귀었어요. 한국 남자와의 데이트는 내게 하나의 사건이었어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꾸 일깨워줬으니까요.”
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던 이규정 감독은 예상치 못한 사랑문제로 고민하게 됐고 이 두가지 문제는 그에게 어느덧 하나의 문제로 겹쳐서 다가왔다.
“처음에는 두 개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영화인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러브스토리에 관한 아주 사적인 다큐멘터리. 그런데 영화인들이 말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입장이 사랑이라는 측면에도 그대로 적용됐어요. 즉 영화감독과 촬영대상이 맺는 관계가 연인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거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과 상호신뢰입니다. 이건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죠. 그래서 내 러브스토리에다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느끼고 있던 바를 같이 넣어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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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사랑에 대한 진실>은 매우 사적인 러브스토리를 통해 성적·인종적·민족적 정체성에 관한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영화는 무겁고 진지하기보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재치가 있다.
또 한가지.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재연드라마처럼 이루어진 형식 때문이다. 이규정 감독은 자신의 러브스토리에 직접 등장한다. 마크와 리차드에게 각각 동의를 얻어 이들과의 사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현해서 찍었다. 이 점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사랑에 대한 진실>을 두고 ‘가짜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제작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뷰를 많이 넣거나 사실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것만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법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다큐멘터리도 드라마처럼 줄거리를 가질 수 있고 감정적 요소들을 가질 수 있어요. 나는 새롭고 다양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 관심이 있어요. 사람들은 진실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주관적이에요. 이 영화에서는 특히 그렇죠. 다큐멘터리도 ‘객관적’ 진실을 담는 것 같지만 그건 신화일 뿐이에요.”
그렇다면 왜 제목을 ‘사랑에 대한 진실’이라고 정했을까.
“진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데, 진실이란 말을 통해 어떤 주장을 내세우거나 결론을 내리기보다 진실이란 것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싶었어요.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항상 혼란스러워요.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고. 예를 들어 마크와의 관계에서 계속 나 자신에게 질문한 게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 아니면 피서지에서 생긴 일처럼 순간적인 감정일까. 대체 뭐가 사랑일까. 진실이 뭘까.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진실의 모호함, 사랑의 모호함에 관한 문제제기라고 할까요.”
호주의 관객들보다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한국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를 더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다고 말하는 이규정 감독. <사랑에 대한 진실>을 본 관객들은 그가 던진 질문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