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략)

한 점 장식 없는 수수한 예배당의

마루에 서서

신랑은 냉수같이 정갈한

신부의 웃음을 바라보고

평상의 옷을 입은 신부 또한

화장기 없는 얼굴로

그녀의 아사달을 마주 보았으면,

박수가 아무리 좋다한들

가난하고 청정한 노래만큼 좋으랴

(하략)

최상호 시인이 바라는 ‘아침 결혼식’이다. 결혼식을 노래하는 건 최 시인만이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 결혼식에 대한 상상 혹은 구상을 해보기 마련이다. 편집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혜정씨도 마찬가지였다.

예도·축포등 국적불명 의식

유행대로·각본대로…No!

“집 앞뜰에서 가족·친지들 모아놓고 축하받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어요. 자그마하게 잔치도 벌이구요. 신랑될 사람과 저는 깔끔한 정장차림 하고…”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우선 시간이 문제였다. 이씨는 직종상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어야 하고, 남자친구는 지방에서 근무해 자신보다 더 바쁜 터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자친구와는 결혼식에 대한 구상을 나눌 겨를도 없었다. 그 다음 문제는 양가 어른들. 아무래도 보수적인 어른들은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하는 무난한 결혼식을 원했다. 결국 이씨가 찾은 것은 웨딩 매니저. 구상했던 대로 못할 바에야 시간과 노력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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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The Companion>

상견례 장소부터 예식장 물색, 신혼여행 장소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주는 매니저 덕에 이씨는 오는 4월 27일 식장에 입장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한 대신 ‘나만의 결혼식’에 대한 꿈은 그저 꿈으로서만 간직하게 됐다.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김명주(가명) 씨도 상황은 같다. 어린 시절엔 ‘내 결혼식은 이렇게 할 거야’라고 시나리오까지 썼던 그였다. “정말 축하해줄 사람들을 불러서 우리 결혼식에 온 사람들에게 제가 직접 만든 쿠키에 감사의 메시지를 새겨 주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친구와 제가 서로에게 쓴 편지를 번갈아 읽구요. 축하의 노래도 부르구요. 그런 작은 축제같은 결혼식을 상상해 봤어요.” 그러나 막상 식을 앞두니 남자친구와 의견충돌이 생겼다. 남자친구 생각은 “둘다 바쁘니 그냥 상식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도달한 합의점은 “쓸데 없는 것은 빼고 한도 내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자”는 것. 예정된 판에 급히 섭외된 배우처럼 뛰어드는 것 같아 흔한 결혼식이 싫었던 김씨는 결국 신부의 역할로 예식에 투입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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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원기 기자>

그러면 요즘 가장 유행하는 결혼(공)식은 무얼까. 식장으로 들어가보자.

예식이 시작된다. 신랑 입장, 그에 이어 신부 입장. 신부가 입장하는 길 양옆엔 미니스커트 차림의 늘씬한 여성이 각각 둘씩 서서 칼을 번쩍 들어 맞대고 있다. 5분 주례사 후 혼인서약식을 마치고 나면 케이크 커팅식. 성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신랑·신부가 케이크를 자른다. 다음은 양가 부모와 하객들에게 인사(신랑은 보통 큰절을 한다). 성혼을 알리는 축하행진, 행진에 앞서 신랑이 만세삼창을 한다. 주례 옆에 미니스커트 차림의 늘씬한 여성들이 다시 선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트럼펫 모양의 축포. 축포가 터지면 예식이 끝난다.

이것은 ‘예도·케이크 커팅·축포’라는 유행옵션이 들어있는 최근의 가장 일반적인 결혼식 풍경이다. 서울 마포구 ㄱ예식장 관계자에 의하면 “예도는 원래 해군 등 군관련 인사들이 결혼할 때 치르는 것인데 요즘은 예식장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준다”며 “하나의 유행”이라고 전했다. 그밖에 예식장에서 주례도 알선해준다. ㄱ예식장 관계자는 “한달 전에만 알리면 주례협회 등에 부탁해서 구해주는데 많이들 한다”고 귀띔한다.

이런 결혼식 문화에 대해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현재 우리의 결혼식은 서구식도 일본식도 우리식도 아닌 국적불명의 의식”이라며 “제대로 된 문화를 전승시킬 컬쳐 메이커(culture maker)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서구문화와 일본문화가 혼재해 들어오면서 우리만의 결혼문화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영화평론가이면서 동국대 영화학과 교수인 유채지나씨도 “한국의 (관습적) 결혼식은 정말 아니다”라며 “혹시 하고 싶으면 본질이 살아나는 민폐 안 끼치는 행사를 기획해보라”고 지적한다. 결혼식의 본래 의미를 살려서 참석한 사람들도 새로운 인생을 축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라는 얘기다.

김지은 기자lun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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